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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가을의 길목에서 전북 부안을 가다.

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를 드립니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태양의 기울기가 낮아지는 것을 보면,

가을이 시나브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풍성한 9월, 가을에 발걸음을 옮겨서 

시선을 뜨거움이 아니라 시원한 전경으로 돌리면서 가을을 만끽하고자 한다.

어느덧 가을의 선선함이 대지를 감싼다. 번거롭고 시끄러운 여름은 사라지고.

벼는 고개 숙일 채비를 한다. 여름의 햇살과 바람을 고스란히 모아

터질 듯 들어찬 벼이삭이 계절의 흐름을 말하고 있다.

벌써 가을의 길목이다. 수확을 목전에 두었건만 농부의 일손은 여전히 쉴 틈이 없다.

지금 뽑아주지 않으면 내년엔 벼 밭이 아닌 피밭이 될 일,

땅으로 사는 사람은 먼 시간까지 내려다보며 산다.

맨발의 농부는 조심스럽고 경건한 마음까지 갖추고 있다.

자연에 순응하고 이치에 따르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을 만한 일이다.

순리에 몸을 맡긴 이곳의 삶을 따라가 보면 가을에 맞는 들뜬 채비에 동행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마음도 풍성해지지 않을까, 부안의 풍경에서 기대하는 것들이다.

부안은 원래 변산이라 불리던 곳이다.

 

 

 

 

누구는 삼한 시대의 국가였던 변한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도

하나 분명한 것은 이 산들이 모두 변산 이라는 것이다. 산 하나하나엔 이름이 없다.

모두 그저 변산 이라고 부를 뿐이다.

어쩌면 나보다 우리를 더 중시하는 마음에서 나온 작은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부안의 새벽은 분주하다. 곰소항의 어선들은 이제 막 밤사이에 고된 하루를 마치고 있고,

이제 세상이 잠에서 깨어 부산해지기 시작할 차례다.

 

 

 

 

곰소 항과 맞닿아 곰소시장이 있다.

가진 생선들을 썰고 말려서 손님 마음에 들라고 보기 좋게 내어 놓는다.

오늘 하루는 또 얼마나 팔릴까,

시장 사람들에겐 하루하루가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는 삶이다.

분명히 조금 있으면 이제 단풍철도도 돌아오고 하는 입장이고,

곰소시장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다.

철마다 달리 풀어놓는 짭조름한 맛 덕에 전국에서 손꼽히는 젓갈 시장이 됐기 때문이다.

맛을 잊지 못한 손님이 소문을 들어 찾아온 손님이 각지에서 찾아온다.

지금은 가을이 제철인 갈치와 전어 젓갈이 한창 팔리는 시기.

곰소시장의 젓갈이 이름을 알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젓갈은 오래 묵힐수록 맛이 깊다. 전부 바다의 공이다.

 

 

 

 

 

부안의 공기를 가르며 바다가 준 또 하나의 선물을 찾아 나선다.

전라북도에서 유일한 염전, 한때 번성했던 줄포 항에 바다가 메워지며 태항이 돼 생겨난 곳,

곰소 항, 북쪽에 위치한 곰소 염전,

그런데 소금을 모으는 소리가 파도를 많이 닮았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는 방법을 따랐기 때문일까? 소금을 얻는 방법엔 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

바닷물을 가둬 모아 기다리면 그것이 소금이다.

본디 바다의 모습이다. 날만 맑으면 그리 속 태울 것도 없는 과정

모습도 방법도 다 비슷하겠지만, 자부심을 갖는 이유는 나름대로 다를 것이다.

곰소염전이 스스로를 칭찬하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바닷물이 이십오 도가 넘으면 증발하기 시작해 소금이 만들어진다.

이때 처음 나오는 소금을 신간 수라 하는 게 가장 맛이 좋다는 소금이다.

그리고 이십오 도에서 이십구도 사이에 나오는 소금을 구관수라고 한다.

얻어진 소금은 일 년간 창고에 재워 둔다. 남아있는 바닷물이 마저 빠져 나오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소금이라야 김치도 달고 음식이 제 맛을 낸다.

그리고 빠져나온 간수는 두부를 만들 때 쓴다. 바닷물도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부안을 대표하는 경관을 찾았다. 변산반도 서쪽에 있는 채석강이다.

채석강은 칠천만 년 전의 흔적으로 파도가 조각해 만들어낸 장관이다.

마치 수천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것 같은 모습에 당나라 이태백이 놀았던

채석강과 비슷하다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

강물에 비친 달을 따려다 그만 빠져 죽고 말았다는 중국의 채석강에

부안의 채석강 또한 그 모습이 뒤지지 않는다.

억겁의 세월이 빚어낸 곳, 사람의 힘으론 가당치도 않은 자연의 솜씨엔

그만 겸손해질 수밖에 도리가 없다.

육중한 구름이 낮게 깔린 오후, 채석강 앞바다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이곳에 해신이 살고 있다는 수성 당이 있다.

여덟 딸을 낳아 일곱 도(道)를 지키라며 시집을 보내고,

막내딸과 함께 남아 서해 바다를 지키는 계양 할미가 해신이다.

계양 할미는 키가 매우 커서 남악 신을 신고 바다를 다녔는데 버선조차 젖지 않았다고 한다.

바다를 보살피며 수심을 재고 풍랑을 다스려 어부와 어선을 보호해 왔다.

바닷사람들에겐 믿음이 필요했다.

내일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에 충실한 아주 근본적인 믿음,

그 믿음 없인 망망 대위로 나갈 수 없을 터였다.

생을 가르는 두려움이 의지할 곳은 그렇게 절대적인 존재밖에 없었다.

격포의 바다에서도 그 믿음은 이어져 내려왔다.

바다가 제 몸뚱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시간은 온전히 육지 생물의 차지가 된다.

 

 

 

 

부안 댐에 가둬둔 깊은 물길처럼 부부의 정도 그 인연도 사람의 뜻에서 나온다.

논밭에 물을 대는 것도 언제나 사람이다.

산은 가을을 늦게 탄다. 오곡이 다 잊고 나서야 제 몸을 물들인다.

산에서는 아직 가을 냄새가 나지 않지만 눈은 그렇지 않다.

지난 초록은 연두로 바뀌었고 살짝 노란 기운도 엿보이기 시작한다.

벌써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것들도 있다.

모진 태풍과 장마를 이기고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 것들이 가을을 맞는다.

그래서 이 계절에 나는 곡식은 저마다 모두 수고한 것들이다.

땅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땅이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떠날 수 없을 만큼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농부에게 수확의 기쁨을 대신할 만한 것이 사실 어디에 있을까.

실하게 들어찬 벼 이상만큼 대견한 곳은 또 어디에 있을까.

 

 

 

 

가을의 문턱에 달라진 모습은 방앗간도 마찬가지다.

붉은 고추를 빛깔 좋게 말려 고춧가루를 내는 일이 이 시기, 방앗간은 온통 매운 내

천지라 눈도 따갑고 피부도 아리지만, 받는 주인장도 기다리는 손님도 마음이 흐뭇하다.

고추는 고추대로 씨는 씨대로 따로 걸러 모아 가루를 내고 기름을 낸다.

곱게 갈라지려면 최소 네댓 번 이상은 반복해야 한다.

김장에 쓸 고춧가루는 조금 없애야 하고 무치는 음식에 들어갈 것은 고아야 한다.

집안마다 안주인마다 원하는 결도 다르지만 오랜 세월 이곳에서

방앗간을 해온 솜씨에 별다른 주문이 없어도 원하는 고춧가루로 빠진다.

 

 

 

 

지금은 한적하기 그지없는 버스터미널,

얼마 있지 않아 분주해질 것이다. 바리바리 보따리에 추석빔을 입고

애간장 녹게 기다리실 노모를 만날 그 흐뭇함이 멀지 않았다.

그래서 터미널에 오면 늘 명절이 떠오르고 또 그리워진다.

설레는 마음에 발걸음이 바빠지는 고향 길, 고향 가는 버스엔 언제나 기대감이 담겨 있다.

가까운 사람을 곧 만난다는 흥분감과 집으로 돌아가는 반가움이 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쁜 도시의 일상이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긴 여행을 평생에 걸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쌍선봉 정상에 있는 월명암, 아주 작은 절이다.

월명암은 신라 신문왕 때인 육백구십이 년에 부설 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부설 거사는 산중에 은거하며 불도를 수행하는 거사 선을 이룬 스님인데,

이곳에서 꼭 십 년을 수도 했단다. 이 세상과 등진 산자락에 상사화가 소복하다.

 

 

 

 

손안에 든 것만 지키느라 나는 더 참하고 소박한 의미를 놓치진 않았는지,

떠나간 여름을 아쉬워하지 않고 다가올 가을에 성급히 요란하지도 않은

기름진 부안의 삶에서 나는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