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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출렁이는 동해가 가을을 노래하는 강릉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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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를 드립니다.

지금과 같이 가슴이 답답할 때, 달려가는 곳이 바다일 것이다.

그곳도 바로 큰 파도가 일렁이는 동해로 출발하는 것이다.

그 파도 속에는 시원함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쏟아낸 아픔과 괴로움도

담아 있을 것이다. 태백산맥을 넘어서면 탁 트인 동해를 바라보며 큰 숨도

쉬었겠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안고 오지 않았을까?

태백산맥의 등줄기 한계령에서 구불구불한 한계령을 넘으며 굴곡진 인생을

바라보며 강릉으로 달려간다.

 

 

 

   

기다리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바다는 이미 계절의 옷을 바꿔 입었다.

세월이 왜 이리 빠른가. 한탄하는 소리를 동쪽 바다는 애써 외면한다.

그 정직한 계절이 어제와 똑같이 흐르는 일상을 타박하며

의미 있는 하루를 만들라 토닥여준다.

살아가는 일이 답답하거나 지루하거나 혹은 잊혀지지 않는 얼굴 때문에

가슴이 무너질 때 사람들은 강릉행 기차를 타고 간다.

 

 

 

 

지난밤 자정 무렵 서울 청량리역을 출발한 기차는 다음 날 아침 여섯 시가

조금 넘자 정동진역에 도착한다.

자동차로 달리면 세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두 배나 더 시간을 들여

기차로 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세상에서 바다와 제일 가까운 역 이 역의 풍광은 어찌나 운치가 있던지

사람들은 끊임없이 기차를 타고 정동진을 찾는다.

기차역 바로 옆으로 망망한 동해 바다가 있는 작은 역,

오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한 간이역의 이 절묘한 풍광은

인생을 돌아보고 사랑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더 없는 무대였다.

더욱이 바다를 지척에 두고 만나는 일출은 벅찬 감동마저 선사한다.

일 년 내내 이렇듯 정동진에는 사람이 많다.

그들 앞에서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각에 해가 뜬다.

도시의 북적이는 거리에서도 작은 방 이부자리 속에서도 해는 뜨는데

분명 여기서 바라보는 일출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늘 바다를 뚫고 올라오는 태양 앞에서 호흡하는 자는 살아야 할 이유를 지니고 있다.

이 말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기대하든지 다 이루어낼 수 있을 듯하다.

태양의 기운은 공평하다.

잘 살아보겠다고 행복해지겠다고 버둥거리다 쏟아냈던 교만과 시기,

거짓과 욕심들이 순결하게 정화되는 시간이다. 깨끗한 하루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어떤 이에게는 감탄사 절로 나는 그림 같은 바다도 어떤 이에게는 삶을 지켜주는 일터다.

바라보는 바다와 그 속에 뛰어들어 부딪기는

바다는 분명 다르다. 바닷속에 뿌려놓은 낚싯줄을 건져 올려 가자미를 잡는다.

 

 

 

 

그저 평소만큼만 했으면 고기가 눈에 띄게 줄면서 도리어 바람은 점점 작아진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동해 바다가 유명세를 타면서 횟집이 등장해

고기 팔기가 좀 수월해졌다는 것뿐이다.

크고 넓은 가슴을 가졌으면서도 바다는 푹푹 나눠주는 법이 없다.

동해 바다는 참 좋은 황금 어장이라 말들 하지만

이 일대에서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강릉 아닌 항 포구는 아주 작아서 십여 척의 배가 들고나간다.

아침 일찍 바다로 나갔던 배가 들어오는 오후에도 소란스럽거나 북적이지 않는다.

 

 

 

 

강릉에는 벌써 바람의 냄새가 달라져 있다.

일찍 추워지는 탓에 일 년이라는 시간이 이곳에선 빠르게 달리고

들판은 이미 황금색으로 변해 있다.

한낮에 햇살이 아직 따갑다고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벼 이삭들은 충분히 영글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계가 들판을 달린다.

사람의 손보다 빠르게 달리는 기계는 불과 한두 시간 만에

서너 마지기 논의 벼를 거두어 버렸다.

벼를 베는 것과 동시에 탈곡도 해줄 수 있다.

한 해 공들인 농사의 수확이 참 간단하다.

한 해 동안 정성 들여 수확한 쌀을 잘 손질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벼이삭 한 톨 한 톨은 농부의 한해 수고의 상징이다.

 

 

 

 

부모의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매 한 가지인가 보다.

도로 한편에 쭉 자리를 깔고 추수한 벼이삭을 말리는 이가 있다.

아침 일찍 아예 점심거리까지 싸 가지고 나와 하루 종일 벼이삭과 함께

따가운 가을 햇볕을 맞으며 작업하는 할머니다.

벼이삭을 잘 말리는 일은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는다.

밥은 뜸을 잘 드려야 맛있게 지어지는 것처럼 마지막 햇볕이 벼 이상의 윤기를 더한다.

어머니의 눈에 젊은이는 다 자식 같은가 보다.

굳이 밥 몇 알을 쥐어준다. 한 시간쯤 지나자, 이리저리 이삭들의 자리를 옮겨준다.

골고루 잘 말리기 위해서다. 어쩌면 평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수확이기에 어머니의 손길엔 정성이 더해진다.

한 해가 다르더니 한 달이 다르고, 이젠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쇠하여 간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늙어 사라지는 것이라 해도

어머니만은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였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어본다.

시간을 멈출 힘이 없다면, 시간을 뛰어넘을 힘을 기를 것이다.

진정한 표상은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 소멸하지 않고 갈수록 더욱 큰 힘을 지닐 수 있다.

강릉에 오면 꼭 한 번 들려야 하는 곳,

마침 그림을 그리러 나온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덕분에 조용하던 이곳엔 생기가 넘친다.

아이들 눈에도 단아하고 품격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이곳은 조선 중기 신사임당이 태어난 곳이자, 그의 아들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이다.

조선 최고의 어머니와 그녀가 기른 최고의 학자.

오죽헌에 무엇이 그들을 만들었을까.

오죽헌은 집 주위에 까마귀같이 검은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붙여진 이름이다.

오죽헌의 대나무는 지금도 검은빛을 띠고 있다.

신사임당의 어머니는 딸만 다섯을 둔 분이다.

조선시대 아들을 낳지 못했던 비운의 어머니인 것이다.

 

 

 

 

그 어머니가 병이 나자, 한양으로 시집간 딸 사임당이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왔다가 병간호가 길어져 여기서 율곡을 낳게 된다.

그리고 대학자 율곡의 품성과 자세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후대 임금 정조가 율곡의 친필 격몽요결과 어린 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보고 책에는 머리글을 벼루 뒷면에는 율곡을 찬양하는 글을 써서

소중히 보관하라는 분부를 내리기도 했다.

그때 이 글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 오죽헌의 어제각이다.

아들을 갖지 못한 친정어머니를 위해 효를 다하던 딸,

사임당 그녀는 이곳을 떠난 뒤에도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걱정하는 시를 남긴다.

 

 

 

 

“산 첩첩 내 고향. 천리 엄마는 자나 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 파,

한 송정이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헤이락모이락 고깃배들 바다 위로 오고 가리니,

언제나 강릉길 다시 밟아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할꼬. “

조선시대 성공한 수많은 아들이 있었지만

유독 사임당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어쩌면 그녀의 특별한 효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관령 아흔아홉 곡의 첩첩산중은 오고 가는 길은

맑은 심성과 인간으로서의 덕목을 기르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토양이 되어준 듯하다.

 

 

 

 

강릉의 가을은 짧다. 여름의 수고는 수확으로 씻어지는데

수확의 즐거움을 만끽할 시간이 별로 없다.

서둘러 거두고 서둘러 긴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법이다.

무엇을 얼마나 가졌나를 묻기보다 무사히 수확할 수 있고,

내년에 또 다른 씨앗을 준비할 수 있음에 만족한다.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번지고. 가슴 든든해지는 얼굴 하나 있다면.

인생이라는 긴 일터에서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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