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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안개 속 호수에 잠긴 고목(枯木), 경북 청송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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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를 드립니다.

청송 하면 푸르름이 변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곳이다.

요즘은 사과의 명산지로 알려져서 많은 분들이 오더를 많이 하던데요.

마음속에 깨끗함으로 다가오는 청송으로 향하면서 마음조차 깨끗해진다.

 

 

 

 

 

깊은 물에 슬픔을 감춘 버들나무가 사는 곳,

안개가 부드럽게 포근하게 고목을 위로한다. 삼백 년 전 마른땅이 호수에 잠겼지만

왕 버들 나무의 뿌리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나무는 의연하고 고고하다. 청송에 가을이 시리다.

낙동 정맥을 끼고 앉은 주왕산은 궁벽한 골짜기로 가득하다.

그래도 가을은 이 산골까지 속속들이 어김없이 내려앉았다.

해발 720m의 야트막한 산.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삼대 암산으로 불리는 주왕산은 기암으로

뒤 덮여 생명이 자라기에 척박한 곳이다.

하지만 제 근원에 아랑곳하지 않고 생명을 뿌리내린 나무가 자꾸만 자꾸만 발길을 이끈다.

 

 

 

 

산이 그리운 이유는 그래서일 거다.

그 곧음에 의지할 수 있기에 산에 기대어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넘쳐흘렀다.

단 십년이지만 천구백팔십 년에 내원 분교가 폐교될 때까지

착한 사람들이 들고 났다. 그래도 세월이 더 덥다고는 할 수 없다.

기억의 증인에게 세월은 녹슬지 않는다.

정작 그리운 것은 사람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그립지 않다.

그때 그곳 그 소리와 냄새, 쌀쌀한 바람이 땀 찬 가슴팍을 간 지리던,

바람 아직도 추억은 날 것으로 살아있다.

 

 

 

 

그래서 남자는 이곳에 남았다. 산나물을 캐고 오가피를 말리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 마을에 살기를 고집부린다.

시간이 사라진 곳에선 무엇도 누구도 바르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원래 사람이 나무를 닮았는지 나무가 사람을 닮았는지는 모르겠다.

감나무는 손쉽게 잘 부러지기도 하지만 겨울까지 열매를 떨어뜨리지도 않는다.

추위에 곧잘 얼어 죽어 양지바른 곳에서 키워야 하지만

가뭄에도 잘 견디고 특별히 걸음을 주지 않아도 된다.

연약하지만 강한 것이 그렇게 꼭 닮아 있다.

 

 

 

 

그리움이 바람처럼 찾아들 때만큼, 우연히 만난 옛 모습이 반가울 때는 없다.

청송엔,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 과거가 사람과 함께 풍경을 이룬다.

험한 산새 덕에 이곳만큼 나귀가 필요한 곳이 없었다.

갈 곳만 일러주면 군소리 없이 주인의 발길을 대신했다.

당나귀는 여간 고마운 짐승이 아니었다.

청송 사람에겐 그 정이 아직까지 붙어 있어 부지런히 운동을 시키고 먹이를 준다.

때가 되면 꼭 돌봐야 하니 누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충실하게 곁에 있을 뿐 어쩌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그것뿐인지도

짐승만큼 순리대로 사는 생명도 없다.

큰 자연 앞에선 사람과 짐승이 구별되지 않는다.

그 섭리를 알면 현명해지는 것이 사람의 이치다.

찬 기운이 내리기 시작하면 짐승을 먹이는 주인은 더 바지런을 떨어야 한다.

푸른 기운이 가실수록 풀 베는 시간도 길어지지만 나귀는 얌전히 기다릴 뿐이다.

 

 

 

 

산기슭에 흐르는 작은 물길들은 청송 서남북에 와서 한데 모인다.

그 운치를 방호정이 누리고 있다. 사백여 년 전 슬픔을 이기기 위해 세워졌다는 정자.

어머니를 잃은 아들이 마음을 달랠 수 없어

모친의 묘가 보이는 곳에 방호정을 세웠다 한다. 옛터에 구석구석 선명한 이야기가 살아있다.

방호정의 아래를 도는 기란 천은 힘든 지난 세월을 보살펴 왔다.

보이는 것은 산수뿐이고. 들리는 것은 물소리뿐 방호정은 편안하다.

이어진 물길은 백석탄으로 향한다. 기암절벽으로 가득한 주왕산이

물길에 길게 들어 누워 있는 모양이 백석탄이다.

시간이 다듬은 풍광, 백석탄.

흰 바위를 가르고 나는 물길의 힘살이 세차다.

하얀 돌이 반짝거리는 내라는 뜻으로 백석탄이라고 불리지만

한편으로는 고아동이라고도 부른다.

 

 

 

 

임진왜란의 부활을 잃은 장수가 고운 풍경에 마음의 상흔을 씻어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 치면 송소고택도 만나게 된다.

조선시대 영조 때 만석꾼이라 불렸던 송소 심호택의 가옥이다.

마당과 사랑채의 경계는 들창이다.

바깥주인이 머물며 객을 접대했던 사랑채는 고풍의 예를 갖추고 있다.

격식 또한 중요한 예의였던 시절 곳곳엔 그 성의를 다하는 구조가 고스란하다.

사랑채 뒤편에 숨어 있는 가옥은 안채다. 안채는 사랑채에 머무는 남자들과

마주치지 않게 하기 위해 헛담을 둘러놓았다

여인의 목소리와 몸짓은 연기처럼 함부로 새어나가선 안 됐다.

 

 

 

 

흙을 밟고 하늘을 보았던 사람들은 지금도 그 방식을 고집하며 산다.

옹기장이가 그렇다.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는 가마를 대하는 손놀림이 조심스럽다.

마지막 단계까지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한다.

벌써 4대째 옹기를 굽고 있는 이곳,

아버지와 함께 새 아들이 느린 옛 방식대로 옹기를 만든다.

지겹기도 했었다.

그래서 떠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세 아들 모두 결국엔 이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세상엔 온기만큼 정직한 것이 많지 않았고 마음은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손끝에서 가슴까지 들어오는 흙의 다양한 느낌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었다.

깨달을 때까지 아버지는 기다렸다.

이제는 모두 솜씨 좋은 옹기장이다

자배기 뚝배기 두멍 밥소라 수십 가지의 요긴한 살림살이가

지금은 몇 종류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청송 옹기가 인정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흙이다.

적색과 청색, 황색과 백색의 흑색까지 찰지고,

부드러운 갖가지 종류의 흙이 청송 옹기가 귀하게 대접받는 데 큰 몫을 했다.

조바심을 이길 수 있는 시간이 되면 흙에 휘둘리지 않는 장인이 된다.

옹기를 만드는 과정은 대부분 그늘 아래다 게다가

젖은 흙이 마르는 동안의 시간은 지난하기만 하다 옹기장이의 자질은 기다림이다.

 

 

 

 

가마에 들어갈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한 해를 꼬박 보내도 가마에서 온기를 꺼낼 수 있는 횟수는 몇 번 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판다 싶으면 눈앞에서 무너져 버리는 야속함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마음속의 소란함은 스스로 달랠 수밖에 없다.

복잡한 실타래 같은 생각은 옹기와 함께 가마 안에 두고 나와야 한다.

사람은 그래서 외롭다.

1,200도가 넘는 열정이 있어야 흙은 그릇이 된다.

일곱 밤과 일곱 낮엔 잠들지 않아야 한다.

반 100년을 옹기장이로 살아온 아버지는 세 아들의 속내를 잘 안다.

 

 

 

 

청송의 밤이 뜨겁다.

언제나 그리운 것은 제자리에 있다.

그립다 보고프다 말하는 사람은 정작 떠난 자들이었지만,

남아있는 아름다움은 그래도 서운해하지 않고 오랜만에 찾아온 일을 나무라지 않는다.

고목에 새 입이 돋는 이유가 그 간절한 바람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리움이 안개처럼 피어날 무렵이 되면,

다시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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