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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가을의 바람이 휘감고 가는 가야산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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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모든 모습들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품고 있는 가야산은 그곳에는 해인사를 품고 있고

지금도 사람들의 한숨과 기쁨을 모두 끌어안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가을바람이 몰아쳐 머리카락을 날릴 때, 내 발길은 어느새 그 오솔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눈길이 닿는 곳에 마음이 있다. 계절에 따라 산이 옷을 갈아입고

햇살에 따라 강물의 빛이 달라지듯 자연은 변화무쌍하다.

그 땅과 하늘에 기대어 사는 삶 또한 같은 모습이 없다.

저마다의 생각대로 저마다의 형평과 처지대로 살면서 다름을 인정해야 하건만

못내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존재하는 세계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그리고 객관적 사상의 세계,

깨우치고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한 간절한 기원이 새벽잠을 깨운다.

세계는 한없이 넓고 깊은 바다와 같다.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추는 순간,

우주의 각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친다 했으니

오염이 없는 청정무구 본래의 마음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길을 찾는 이들이 해인 삼매에 빠져든다.

 

 

 

 

가야산을 뒤로하고 매화산을 앞에 두고 해인사에 아침이 밝는다.

가야산이 있어 해인사의 정기가 더욱 밝고 해인사가 있어 가야산은 그 존재 이유가 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마당을 쓸며 마음에 남은 잔상들을 함께 쓸어버린다.

비워야 채울 것이 보이는 복 채우고 싶다면 먼저 말끔하게 비우라고 스님은 법을 가르친다.

해인사는 802년 신라 애장왕 때 수능 화상과 이정 화상이 세웠다 하니

벌써 1200년이나 된 사찰이다.

고려는 거란의 침공을 물리칠 힘을 모으고자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5200여 개의 글자를 완벽하게 새기는데 무려 77년이나 걸렸다.

긴 시간만큼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많은 마음들이 모아졌을 것이다.

그 마음을 잊지 않고 늘 간직하며 살 수는 없을까

고려의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 앞에서 행렬은 멈추고 목판을 옮길 준비를 한다.

 

 

 

 

새로 나라를 건국한 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대장경을 왜 해인사로 옮겼을까.

원하는 것이 크고 멀리 있을수록 바람은 절실하나 욕심은 때로 길을 잃게 한다.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처음처럼 처음 품은 마음처럼 순결하고 올곧게 정진하기를 바란다.

그 때문에 마치 붓다가 인도의 가야산에서 머문 것처럼 가야산에 대장경의 염원이 안치됐다.

경상남도와 북도에 걸쳐 넓게 자리 잡은 가야산은 해발 1430미터의 주봉 상왕 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비계산 동쪽으로 백운산으로 이어진다.

웅장한 산세로 세상을 감싸고 있다. 비할 바 없이 맑디맑은 물을 벽개 청수라 했던가.

신선이라도 나올 듯 홍류동 계곡에 떠가는 단풍 하나가 선연하고 정갈하다.

 

 

 

 

가야산 자락 작은 마을에서 목탁 소리가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그를 목탁 장인이라 부른다.

대패질 한 번 하고 소리 한 번 들어보고 손질을 한 번 할 때마다 변하는 소리를 점검한다.

목탁의 생명인 소리를 찾는 작업이다.

살구나무 토막에 작은 구멍을 내고 속을 파내는 것에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는데,

도대체 그 소리를 찾아내는 것이 쉽지가 않다.

대패질 한 번 칼질 한 번에 수십 년 수고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스님들은 목탁을 두드리며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지만.

목탁 만드는 장인은 몇 날 며칠 같은 자리에서 온 신경을 소리에 집중시키며

그 삶의 의미를 묻는다. 목탁은 원래 수도승에게 교훈을 주는 뜻에서

밤이고 낮이고 눈을 감는 일이 없는 물고기를 본떠 만들었다 한다.

십리 밖까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목탁이다.

 

 

 

 

목탁 하나를 만들기 위한 공력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작은 재료를 구하는 일이다

가야산 깊은 골짜기 살구나무 뿌리를 묻어 놓았다.

물과 흙과 덥고 찬 기운들 그리고 시절에 맞춰 불어주는 바람의 도움으로

나무는 썩고 또 썩어가며 진을 빼낸다.

선인들은 백여 년씩 묻어두기도 했다는데, 놀랍게도 나무는 썩어가면서도

그 형체를 잃지 않고 온전한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어느 과정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장인의 한결같은 정성 속에서 나무는 묵은 때를 벗고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그 나무토막에 몸통을 만들고 손잡이를 만들고 소리를 입혀 간다.

이로써 나무는 옛 이름을 벗고 목탁이 된다.

쪼개고 다듬는 솜씨만으로는 안 된다 소리를 듣는 귀가 없다면 최고의 명품 목탁은

만들 수가 없다. 꼬박 보름이라는 고통의 시간이다.

 

 

 

 

세월을 따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달라졌다.

한때는 충효를 외치고 예의를 주장하기도 했건만,

이제 사람들은 쉽게 잡을 수 없는 이상보다는 작은 내 호주머니만 들여다본다.

심지어 욕심과 경쟁이 성장의 동력이라고도 한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허망한 번뇌의 탑만이 쌓아간다.

열매를 보고도 감사보다 계산이 앞서는 건 그 때문이다.

햇살은 아직 강렬해도 산 중턱 마을엔 가을이 깊어가고

긴 겨울과 새 봄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곧 닥칠 김장철에 대비해 출하할 배추들이 실하게 자라 있다.

산자락에서 키운 배추는 제법 인기가 좋다.

그런데 동네 아낙네들은 배추보다는 딸기를 위해 온 정성을 다한다.

오월에 씨를 뿌려 여름 내내 키운 딸기 모종은 이제 비닐하우스로 옮겨야 한다.

이건 겨울에 나올 딸기들이다.

 

 

 

 

그때그때 나오는 배추 값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지만

철 이른 겨울딸기는 비싼 값에 팔린다.

그 돈으로 자식들을 키워냈지만 정작 생활은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

조용하던 산길 속에 신나는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를 달리는 이는

우체국 집배원 아저씨다. 편지 하나 소포 하나를 전해주기 위해 그는 산을 오르내린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떠나고 배달할 편지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그의 일은 여전하다.

이 마을 저 마을 뚝뚝 떨어져 사는 이들에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단 하나의 편지라도 제때 전해주려면 하루해가 짧다.

애정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보이기 마련이다.

집배원의 마음 씀씀이가 멀리 떨어져 사는 어떤 자식에 비할 바 없이 고맙다.

산골의 마을 집배원은 이제 몇 주 후에나 할머니를 다시 찾을 것이다.

 

 

 

 

가야산 한가운데는 거대한 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 자연이 만든 호수가 아니라

합천댐이 건설되면서 생겨난 사람이 만든 호수다.

호수와 산 우리를 끼고 달리는 호반 도로가 무려 40Km나 된다.

합천댐을 만들어 전기도 얻고, 농업용 수도 얻었다.

호수에는 사시사철 낚시 꾼들을 열광시키는 붕어와 잉어 등 다양한 물고기들도 산다.

전국 각지에서 호숫가 풍광을 보러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댐과 호수로 인해 고향을 잃고 땅을 잃은 이들이 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작은 마을엔 수몰 지구에서 나온 이들이 모여 산다.

2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그 땅이 아쉽다.

멀리 떠날 자신이 없었던 이들은 옛 집 옆에

둥지를 틀고 이곳을 고향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산 밑 들판에 비하면 초라하다 하겠지만 산골의 다랑이 논에서도 추수가 한창이다.

말끔하게 베어낸 볕 단들은 며칠 동안 햇볕에 말린 것들이다.

더 좋은 쌀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얻기 위해 온 식구가

모두 나와 마지막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이 논의 수확은 가족들 모두의 것이다. 탈곡 작업이 시작됐다.

한 해에 살다 보면 태풍도 있고 가뭄도 있기 마련인데

올해는 무사히 넘기고 여기까지 왔다 꼼꼼히 계산해 보면 한숨이 나올 테지만,

이 들판에서는 아무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작은 수확이라도 즐겁고 감사하다.

다른 건 다 견딜 수 있는데 고생만 시킨 아내가 가시처럼 마음에 걸려 있다.

농부는 아내가 주는 새참을 먹으며 한동안 말없이 긴 생각에 잠긴다.

점점 사람들이 떠나고 주변이 이렇게 적적한데

무엇이 가야산 자락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사시사철 일 더미에 묻혀 사는 아내는 왜 아무런 불평이 없는 것인지

농부는 가을 거지 끝난 들판에서 해답을 얻는다.

 

 

 

 

수확의 기쁨은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그 양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서 만족하지 못하는 거라고 잘라 말할 수도 없다.

평생을 바치고도 얻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큰 뜻을 품은 자들은

달려갈 길이 멀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누가 최종 승자가 되는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세상의 잣대 흔들리지 않고 이웃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말며

오늘 주어진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 진정한 즐거움이며, 행복일 것이다.

가을을 재촉하며 가야산을 휘감고 가는 가을바람과 함께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날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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