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 여행

국도 1호선에 가을이 깊어지는 목포, 나주, 장성을 가다.

728x90
반응형

안녕하세요. 가을의 바람과 함께 내리쬐는 태양은 더욱 뜨거운 들녘에서

최고의 삶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제법 길가의 잔디도 붉은색으로 변색되는 데, 떠나고자 하는

붉은 마음은 주체를 못 한다. 국도 1호선의 남도 끝점인 목포에서부터 함평,

나주, 장성을 향하면서 가을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시원하고 참신한 바람이 부는 가을 길을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세월 따라 사람을 품었던 곳. 바다 따라 만남과 이별을 말하던 곳.

남도 이천 리. 사연을 담은 길은 목포에서 시작한다.

국도 1호선 신의주까지. 굽이굽이 먼 길은 차라리 아픔 이리라.

백이십오 년 전 목포항을 강제 개항시킨 일제는 남도 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이 길을 열었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은 길은 늘 그렇듯 또 다른 삶의 추들로 채워져 간다.

 

 

 

 

파도가 밀어 올린 해는 게으른 듯 오른다.

느릿한 아침 해를 보다 못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향연 그건 살아있습니다.

펄떡이는 활어처럼 활기가 넘친다.

거친 파도와 씨름한 대가로 바다가 내어주는 것들,

비릿한 생선 냄새만큼 반가운 것이 있을까 싶다.

 

 

 

 

유달산은 말없이 목포를 품고 있다.

일제 강점기 목포는 유달산을 중심으로 일본인 거주지역과 한국인 거주 지역이 나뉘어 있다.

누군가에게 그때의 기억은 현재형이다.

그 시절, 사람 냄새 그윽하던 동네도 세월과 함께 빛이 발했다는 점은

기억의 시간만큼이나 솜씨 좋은 목수의 손은 쉴 틈이 없었다.

하려 했던 시절이 없던 것도 아니다.

신장로를 따라 내달리던 시절도 기껏해야 반세기가 아닌가.

그래도 기억은 먼지에 녹아 있다.

길을 따라 이야기는 흐르기 마련이다.

 

 

 

 

목포를 벗어나자 가을이 무르익었다. 세월에 익은 아낙네와 검붉은 대지가 꼭 닮아 있다.

가을 저녁 붉게 물든 황토 길은 새색시 발걸음처럼 수줍다.

그러나 땅과 같이 사는 것은 고집이다.

무엇 하나 거르지 않고 일 년을 하루같이 사는 이유는 삶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 순하디 순한 땅을 걷노라면 욕심 낼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 검붉은 대지 위로 황토 빛 노을이 진다. 길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어준다.

같은 자리 같은 곳을 향하는 한결같은 나그네의 삶을 본 적이 있었던가.

현실과 죽음을 넘는 만남의 공간에는 게으를 틈이 없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기대는 그래서 애당초 잊은 지 오래다.

 

 

 

 

함평으로 이어지는 길, 어귀에서는 정겨운 얼굴들이 잠시 쉬어가라 미소 짓는다.

팔 벌린 허수아비의 소맷자락 사이로 가을바람은 무심한 듯 지난다.

저무는 해가 채색하는 가을빛, 수채화.

아침 영산강은 말없이 물 한 개를 피어 올리며 고요하다.

삼백 오십 리를 흐르며 남도의 뱃길과 육지를 잇는 수로 역할을 하기도 했던

영산강은 남도인의 젖줄이자 뭇 생명들의 고향이다.

늘 그렇듯 강을 벗 삼아 살아온 어부에게는 고뇌와 갈등이 머물지 않는다.

손바닥만 한 고기라도 한두 마리 걸려주면 그만이다.

강물이 다시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행여 뱃소리에 놀라지나 않을까 미안한 마음만을 남긴다.

 

 

 

 

영산강을 끼고 드넓게 펼쳐진 나주 평양 농부에게 시월은 알알이

영근 나락 위로 쏟아지는 황금빛 햇살이다.

바람 찬 세월, 땅을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은 넉넉한 이 땅의 깊이에 감사하며 가을을 거둔다.

이 수확의 철이 지나면, 들판에도 늦가을 스산한 바람이 불 것이다.

하늘의 맑은 햇살과 바람과 비, 그리고 농부의 뜨거운 눈물과 땀이

어우러진 한 톨 한 톨의 쌀.

 

 

 

 

지난날 국도 1호선은 이 목숨 같은 쌀을 빼앗아 가는 길이었다.

그 아픈 역사를 덮어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농부는 길 위에 황금빛

알곡 이랑을 만들고 가을 햇살을 불러들인다.

굽이굽이 이어지며 고향마을 신장로로 남아 있는 국도 일호선

길은 고향 마을과 함께 고즈넉이 나이를 더해가고 있다.

 

 

 

 

장성으로 접어든 길 위에서 이 계절보다 더 넉넉한 고향의 마음과

사람 사는 훈훈한 정을 만난다.

작은 시골, 마을 가게엔 주인이 따로 없단다.

사람들은 물건을 고른 뒤 양심껏 물건 값을 치른다.

거스름돈도 알아서 챙겨간다. 행여 돈이 부족하면 장부에 적은 뒤 나중에 셈을 해도 된다.

삭막한 세상, 믿음만으로 운영되는 이 가게가 남들은 그저 신기한 모양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겐 별스러울 것도 없다.

 

 

 

 

넉넉한 고향의 마음을 품고 길은 숲으로 향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길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숲은 점점 더 깊어진다.

아주 오래된 시간이 만들어낸 숲의 깊이와 그 깊이는 숲이 만들어내는

풋풋한 향기와 함께 맑은 기운으로 차오른다.

축령산, 삼나무 숲은 깊은 심호흡 한 번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싱그럽게 한다.

사람들은 이 숲에 기대어 삶의 축복을 기원한다.

 

 

 

 

고향의 마음을 담고 어머니의 골 깊은 주름처럼 남도를 지나는 길,

세월을 따라 길은 강물처럼 이 땅 사람들의 삶 속으로 굽이쳐 흘러간다.

국도 1호선. 우리는 길 위에서 목포, 나주, 장성에서 고향 모습을 보았다.

 

 

 

 

굴곡진 삶을 깊숙이 간직하고 살았던 지역들이 긴 한숨을 토해낼 때마다

빠져나오는 것을 보면서, 달려가는 우리 인생도 그와 같은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728x90
반응형

네이버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