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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산은 붉게 물들이고 바다를 보듬은 가을섬, 강화도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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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요한 전등사의 생수 한잔을 들이키며 최고의 삶 인사를 드립니다.

예전 같으면 큰 맘을 먹어야 배를 타고 가야 했던 강화도.

옛 조상들이 나라의 큰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이곳으로 와서 피신했던 땅이다.

이제는 다리가 놓여서 몇 분이면 다리를 건너지만 나룻배로 강화로 들어갔던 

나그네들의 피곤함을 생각하며, 작금의 난 행복한 사람이다. 생각하며 강화로 핸들을 돌린다.

일 때문에는 한두 번 스쳐가듯 다녀갔지만, 이제는 나의 눈에 찬찬히 찍어 가고 싶다.

 

 

 

 

항상 가던 길과는 반대로 가고 싶은 날이 있다.

돌아보면 마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것처럼 다가오는 등 뒤의 길.

반복되던 망설임을 접고 그 길로 들어선다.

길 위에서 만난 고마운 마음 하나 가을이다.

어느새 산도 바다도 물들이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가을은 천천히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린다.

가을이 내린 섬에서 먼저 발길이 닿은 곳.

살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소리 없이 깊어지는 가을처럼

전등사는 상처가 많았던 섬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준 곳이다.

처마 아래 수백 년 넘게 절을 떠받치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의 형상이 있다.

나부상은 이 절을 짓던 목수가 자신을 저버린 여인을 조각해 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목수가 원했던 것은 여인의 끝없는 고통이었을까? 아니면 뼈아픈 참회였을까?

사랑과 미움이 한 몸이듯 풍경에도 두 마음이 있다.

풍경의 겉과 속 겉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속은 조용히 다가가는 이에게만 열어준다.

구부러진 산길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시간도 살결에 와닿는 바람처럼 넉넉하다

이십여 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 숨 가쁘던 시간들을 지나 이제야

어깨 위로 내려앉은 가을 햇살을 즐기는 여유가 생겼다.

 

 

 

 

풍경의 속마음을 조금씩 읽으며 올라간 길 참성단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단군왕검이 하늘의 제사를 지내던 영혼의 제단에도

수천 년을 돌아온 가을바람이 돌 틈 사이로 안부를 전한다.

수확이 한창인 들녘에서 만난 노인의 가을은 오랜 기다림 끝에 채워지는 넉넉함이다.

누런 가을이 노인의 마음을 두드릴 때쯤이면 어머니의 마음은 벌써 자식에게로 가 있다.

세월이 흘러도 노인의 마음은 어린 자식 키우던 그때처럼 여전히 곱고 선명하다.

 

 

 

 

시월에 강화도를 살찌우는 또 하나는 새우다.

바다에 내린 그물을 네 시간 만에 건져 올리는 시간.

인근 섬들의 개발로 부쩍 고기가 줄었지만, 새우 잡이는 아직까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바다 역시 마음을 언제나 다 내어주는 건 아니다.

크기별로 분류된 새우는 배 위에서 바로 소금에 재워져 싱싱한 젓갈이 된다.

새우 덕분에 어부는 아직 만선의 꿈을 꾸고, 나는 김장을 준비하실 어머니를 떠올린다.

이른 새벽 파도 소리를 뒤로 하고 산길을 오른다.

섬의 곳곳에 남겨진 앞서간 이들의 흔적을 온전히 만나보고 싶은 이유다.

강화도는 역사의 질곡마다 온몸으로 고통을 떠안아왔다.

 

 

 

 

섬의 최남단에 위치한 분오 돈대, 돈대는 한양으로 이어지는 뱃길을 보호하던 조선시대 해안 경비초소다.

평소엔 농사를 짓다가 전시에 동원된 열 명 남짓한 군사가 바다 건너 침입한 왜적과 맞섰던 곳이 바로 돈대다.

돈대를 지키지 못한 군사들은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숱한 아픔을 삼킨 바다는 깊고 널은 품을 지녔다. 그 위로 새로운 추억들이 발을 담근다.

많은 이들의 염원과 희생으로 다져진 갯벌은 오늘도 누군가를 위해 그 깊은 속내를 내준다.

아이에서 엄마가 된 여인과 그 이의 아이들 세월의 간격은 있지만

서로의 손과 발을 타고 흐르는 갯물에 마음은 모두 넉넉해진 듯하다.

 

 

 

때로 외롭고 쓸쓸한 길을 혼자 가더라도 누군가 앞서 그 길 위에 남겨둔 온기를 발견한다면,

나는 잠시라도 따뜻하리라.

가을 섬은 깊은숨을 내쉴 때마다 조금씩 멀어지는 삶의 아슬한 수채화를 닮았다.

그곳에선 평생 혼자인 태양도 흘러간 시간 속에 갇혀 사는 사람도 외로움에

지친 누군가도 모두 제 빛깔로 어우러져 아름답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이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가을 섬에서 온전히 물들었던

시간들을 한 번쯤 뒤돌아보며 행복해하리라.

 세월을 재촉하며 좌우로 흔들거리는 시계추도 발길을 옮기는 흔적을 기억하고

눈으로 찍어 마음에 담고, 사진기로 찍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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