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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호수 밑에 마음을 묻은 만추의 옥정호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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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사봉에서 안개가 자욱한 옥정호에서 최고의 삶 인사를 드립니다.

사람의 마음의 깊이는 알 수 없지만 물의 깊이는 아무리 깊어도 체크가 가능하다고 하죠.

오늘따라 한 치 앞을 모를 정도로 호수와 산허리까지 온통 운무로 가득하다.

무대의 전주를 하면서 고객들을 맞이하는 것처럼 축제를 벌이고 있다.

기분 좋게 옥정호를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긴다.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내 비밀은 눈물을 거쳐 한숨을 거쳐 떨리는 가슴을 거쳐 한 조각

붉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 비밀은 소리 없는 메아리와도 같아

차마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섬진강 물이 길을 잃어 오도 가도 못한 지

여든 두 해 물 안으로 언뜻언뜻 비치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일까.

바람도 없는 가을 호수, 호수 위를 스치는 고요한 향기는 누구의 입김이며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중의 파문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나뭇잎은 또 누구의 발자취일까?

옥 같은 손으로 키워주신 부모를 가슴에 묻으면 미련 없이 떠나질 줄 알았던 옥정호.

 

 

 

 

 

호수 위로 가늘게 흘러가는 삶은 굽이굽이 노래가 된다.

들판이 예쁠수록 사람살이는 고달프다.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 일렁거린다.

설움도 그리움도 옛말, 그것이 빠져나간 자리에 마른 촌 논 같은

무심한 평화가 찾아왔다. 어느새 평화로운 풍경의 주인공이 돼버린 노년의 삶.

가을이 노인의 허허로운 뒷모습을 닮았다. 여기 옥정호,

이를 악물고도 참지 못할 사랑이 잠겼나 창칼 같은 아픈 기억이

옥정호의 가을을 노랗게 물들였다.

기진맥진해진 몸이 온몸 깊숙이 가라앉은 숨을 토해낸다. 몸도 마음도 한결 홀가분하다.

 

 

 

 

물에 잠긴 것이 어디 눈에 보이는 산과 들뿐일까.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아픈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 파란만장한 인생 풍파 한 데 모아 푹푹 삶은 후 푸념 섞어 푸닥거리를 한다.

팔이 아프도록 짓이겨도 어느 한 기억은 죽어도 형체를 유지하고 싶은 모양이다.

날 때는 우리 모두 조그마했고, 날 때는 우리 모두 푸르렀다.

무엇으로 푸석푸석 헐거워진 마음을 다시 단단하게 추스를 수 있을까?

다 버리지 못하고 다 비우지 못하는 나약함은 때로 지극히 사소한 것에 집착을 보인다.

살면서 아깝고 아쉬운 채로 지나간 게 얼마나 될까 헤아려본다

그렇지만, 모두 부질없는 일, 활활 날려 보내고 싶은 상명들이 하나, 둘, 셋

새처럼 날던 낙엽이 비로소 쉴 곳을 찾았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나무는 가장 붉게 타오른다.

울긋불긋 온 산하를 그을린 이 불길을 누가 감히 끌 수 있을까?

 

 

 

 

불덩이를 삼킨 듯 가슴속에도 뜨거움이 번진다.

만추 산 하나를 그대로 안아버린 옥정호에 취해 노을도 길을 잃었다.

안개에 오래 머물다 스며든 아침 호수 위로 파란 하늘이 달려온다.

고립된 시간, 지난여름 못 다 쓴 편지 혹은 사람과 사람이 어긋난 흔적들이

쭈뼛거리며 서 있다. 왜 추억은 겨울이 오기도 전에 앙상하게 야위어 가는가?

점점 시간의 갈피가 두터워진다고 느껴질 때면, 다 용서하지 못한 것들을 태운다.

자욱한 세월의 습기가 시야를 가린다.

 

 

 

 

느릿느릿 멀어져 가는 날들, 이제 흐리고 바람 부는 그리움은

영원히 되어 속을 훤히 비운다. 고운 기억들이 가문 들녘에 서성인다.

저무는 하루를 무심히 굽어보는 날, 딱딱하게 티눈처럼 박힌 그것은

한 때 고개를 파묻고 울게 하던 갈망 이리라.

다 내려놓은 두 손은 이제 더운 이마를 짚는 것으로 족하다.

 

 

 

 

한 세상 여행처럼 왔다. 소풍처럼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애초부터 길은 없었는지 모른다.

한 줄기 가느다란 손으로 그려진 삶의 궤적, 돌아보면 언제나 길은 삶의 뒤를 따라왔다

사람들이 애써 찾으려는 길은 욕망과 관념이 만든 허상,

길은 걷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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