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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그 붉은 뜨거움의 고창에서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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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입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기온의 차가 있지만 낮에는 뜨거움을 토해내는 여름처럼,

이마의 흐르는 땀방울들이 굵어짐을 느낄 수가 있죠.

이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차가운 수박 한 덩이로

더위를 몰아낼 수 있다면 그처럼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제 자리에 앉아서 생각만 할 수 없는 일, 인생도 그렇 듯,

여행자는 길을 떠나야 한다. 떠나는 그 길 위에서 참 보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더위 때문에 발걸음은 무겁지만, 단단하게 보이는 저 끝의 봉우리를 향해 떠난다.

그 붉은 뜨거움의 고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초록이 내린다. 수평이 된 대지 위에 눈이 오듯.

사뿐사뿐 초록이 내려 쌓인다.

이 순결한 색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러나 이내 궁금증이 풀린다.

꿈틀대는 생의 근원은 붉은 뜨거움 무언가에 대한 간절함이다.

때로 그 마음은 연한 주왕의 바람, 주왕의 불빛으로 나부끼며 속삭입니다.

이만하면 제법 의미 있는 삶, 사랑 하나 아니겠느냐고.

 

 

 

 

본래 외침을 막기 위한 오백 년 전의 목적과는 달리 왜 이곳에 서면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는 것일까.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얼굴도 알 수 없는 기다림이지만 낯설지 않다.

꽃 피우지 않으면 건너뛸 수 없는 봄.

마음이 몸을 솟구쳐 뛰어내리지 않으면 구름 한 점 바람 한 입 피워낼 수 없는 게 장미꽃이다.

고창의 초여름은 보리와 함께 깊어간다

누구든 눈이 부시게 푸르는 어느 한 기억이 있기에

눈물 같은 일생을 힘껏 살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초록이 무성하기 이전 고창의 대지는 유난히 붉은빛이다.

 

 

 

 

이 땅의 붉은 기운은 사람도 꼭 제 기운처럼 뜨겁게 살게 하는 모양이다.

한 평생 논밭을 일구며 묵묵히 살아온 삶이 그 어떤 순례자의 길 못지않다.

무언가를 향해 몸살을 앓는 간절함.

그곳으로 살아 있음을 뜨겁게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현실이 꿈같고 꿈이 현실 같은 나날들이 계속되게 잠시 꿈꾼다.

몽글몽글하게 뭉쳐 있는 갖가지 욕망들을 잘 풀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물든다면 붉은색으로 물들고 싶다.

이 뜨거움을 한 만 년쯤 간직해 두고 싶다.

너무 큰 바람일까.

붉게 물든 마음 한 자락 초여름 햇살 아래 아낌없이 물길을 내주고 있다.

 

 

 

 

소금 또한 제 몸의 수분을 다 내주고도 정작 자신은 메마르지 않는다.

차가워 보여도 그 속은 붉고 뜨겁다.

첫 소금을 내느라 분주한 고창의 하얀 풍경이 정겹다.

모든 농사가 그렇듯 소금 농사 또한 정직함에 있어선 예외가 없다.

바람이 세면 소금 굵기가 가늘어지고 햇볕이 약하면 소금 양이 적어진다.

하얀 노다지 밭이라 불렸던 염전의 영화는 이미 뒤안길로 돌아선 지 오래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밭에서 자식 농사를 다 지어 놓고 남몰래 한숨을 돌렸으리라.

저무는 날의 염전은 조금씩 시간 속으로 불려 간다

소금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소금이 아니라 묵직한 삶의 무게다.

 

 

 

 

바람이거나 혹은 시간의 흔적 앞에 사위지 못하는 기억은 붉은색으로 더 진하게 간직된다.

불쑥불쑥 예고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해묵은 기억들,

한 번 옮겨 붙으면 끄기 힘든 불과 같아 조심조심 달래며 산다.

그래야 그 색이 더 짙어지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누군가 공들여 가꾸고 다듬었을 그 마음을 천천히 읽는다.

있는 듯 없는 듯, 수줍은 새색시 같은 봄이 조용히 먼저 와 있다.

다시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강 건너 마을에도 아스라이 그 계절이 왔다.

계절이 오고 가듯 우주와 세상의 이치도 돌고 돈다.

결이 고르고 단단한 붉은 대추나무를 깎아 거기에 자력을 입힌 바늘을 꽂으면

전통 나침반 윤도가 완성된다.

십이지와 팔계로 방향을 표시하는 윤도엔 음양오행,

이십사 저루를 표시하는 한자가 깨알같이 들어간다.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 벌써 사 대째 동그란 나무 안엔

우주의 이치와 세상만사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이든 가야 할 길을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더 많이 흔들려야 하는 것일까.

 

 

 

 

누구의 여름이라도 처음엔 빼곡한 숲으로 시작된다.

그러다 가지를 치고 속을 비워내며 저마다의 길을 찾아간다.

살아있는 이들이 치러야 하는 외로운 여정이다.

그러나 욕망과 집착의 끈을 끊어내기도 맑은

영혼이 쉴 자리를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붉은 띠 두른 지평선. 생이 꿈틀대는 고창에서 헛헛한 가슴을 치유한다.

서둘지 마라.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인생은 보이지 않지만,

더 짧은 생을 사는 다른 무엇보다 우리는 긴 인생을 살기 때문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고창에서 붉은색으로 물들어 정열적으로 올여름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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