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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너무 푸르러 검게 보이는 섬, 흑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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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를 드립니다.

언제나 육지에서 발을 떼는 순간, 내 중심은 붕 떠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미지의 설렘, 두려움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여행의 시작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인 것이다. 망망대해 속에서

유배를 갔던 선조들은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유배를 견디고 나갈 때는

어떤 마음으로 나갔을까? 지금은 2시간 거리로 갈 수 있었지만 옛날은

아득한 거리였다. 난 그 길을 가면서 아득한 그날을 더듬으며 여행을 한다.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렸다는 흑산도.

아가씨의 설음이 고여 있는 곳, 흑산도는 바다의 비릿한 내음으로 문을 연다.

항구에는 늘 싱싱한 고깃배가 검푸른 바다의 생명들을 풀어놓는 것이다.

귀하신 흑산 홍어를 대신하는 건 간자미다.

얼핏 보면 홍어지만 홍어 맛에 비할까. 그래도 뱃전에서 금방 올라온 간자미의

싱싱한 맛은 홍어 그 이상이다.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달려도 두 시간 거리 섬.

아낙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먼바다에서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들을 기다렸을까.

그러나 이제 섬사람들은 눈앞에 바다에서 우럭을 키우고 전복과 소라를 줍는다.

 

 

 

 

어부들이 정박하는 칠 형제 섬 너머엔 사리 마을이 있다.

흑산도의 나폴리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섬 마을이다.

그러나 한때 팔백여 명에 이르던 주민은 백여 명으로 줄고 정겹게 이웃한 집들은

대부분 비어있다. 마음을 보듬고 살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흑산도엔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까?

진리 마을 언덕엔 그 시기를 추정케 하는 지석묘군이 있다.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지석묘들이다.

육지로부터 머나먼 그곳까지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일찍이 섬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신앙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단 한 그루뿐이라는 희귀한 나무 초령목.

그 가지를 꺾고 불전에 놓으면 수호 신령을 불러 기름을 점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향기로운 흰 꽃을 피우던 초령목은 수년 전에 고사했고,

남은 것은 귀한 줄기뿐이다. 흑산도엔 신앙만큼이나 두터운 선비 정신이 살아있었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가 독립된 나라임을 강조한 “기봉 강산 홍무 일월”

강화도 조약에 반대하던 최익현은 신의 목을 베소서 하며 도끼를 들고 상소했고,

흑산도 유배 시절 남긴 그 기개와 정신은 지금도 면면이 흐른다.

 

 

 

 

흑산도의 큰 자부심인 정약전의 서당 복성 제다. 정약전은 다산 정약용의 형이다.

복성 제로 오르는 길목은 단단한 돌담길이다.

얼기설기 쌓은 듯 하지만 세찬 바닷바람에도 끄덕 없이 선비 정신과

오늘의 시대를 이어주고 있는 듯하다. 세월의 덮개를 얹은 돌담이 끝나는 곳엔

작고 남루해 더 눈길이 가는 성당이 있다. 조선 후기 가톨릭 역사와의 연결고리는

이 사래 성당이다. 심한 박해 속에서도 열렬히 가톨릭을 전파하던 정약전은

이곳 흑산도로 유배됐다. 목숨과도 맞바꿀 신앙심이었다.

그러나 그 절망의 섬에서 그는 희망을 심어갔다. 복성제를 세워 후학을 키워낸 것이다.

그의 십사 년간의 유배 생활은 빛나는 자산을 남기기도 했다.

흑산도 인근의 물고기와 해산물 155종을 채집해 조사한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 생태도감 자산어보가 그것이다.

 

 

 

 

선비의 치열한 몸부림, 한반도를 꼭 빼닮은 지도 바위를 바라보며, 그는 끝까지

선비의 소임을 기억했을 것이다.

엄격한 신분 사회 속에서도 정약전은 밤새 어부들과 어울리며 검게 탄 심경을

푸른 희망으로 바꾸어낸 진정한 선비였다.

자산어보가 기록한 풍부한 어종 가운데서도 흑산도를 대표하는 건 단연 홍어다.

홍어는 십일월부터 이월까지의 혹한이 제철이다.

그러나 요즘에도 칠 킬로그램이 넘는 튼실한 홍어들이 걸락을 문다.

 

 

 

 

험난하던 섬 생활의 시름은 그렇게 홍어와 함께 잊혀 갔을 것이다.

사철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는 섬, 흑산도.

육지로부터 머나먼 그 섬은 오랜 세월, 삶의 막바지에 이른 선비와 나그네들의

유배와 절망의 땅이었다. 그러나 흑산도는 절망의 고도에서 유배의 절망을 딛고

일어선 한 선비처럼 바닷속에 펄펄 뛰는 홍어처럼 강인한 삶의 의지가 넘치는 섬이다.

흑산도. 너무 푸르러 검어 보이는 섬, 우리의 기억은 그 깊은 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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