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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하늘과 맞닿은 태백에서 미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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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드립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하늘을 바라 본지가 손을 꼽을 정도다.

그만큼 여유가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목표를 삼았던 것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도 없다.

하지만 달려갔던 자리에는 조그마한 흔적들이 있다.

그 흔적이 추억의 하늘과 함께 맞닿는다면 그것처럼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오늘 하늘과 맞닿은 태백에서 미래를 보며 추억을 기리고자 한다.

 

 

 

 

영원히 산다는 건 영원히 기다린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시나브로 잦아드는 여름 덕문을 살며시 닫고 도론 도론 가을을 기다리는 시간

기다림은 길이 되어 제 스스로의 길을 나선다.

옅어진 햇살처럼 더 투명해진 계곡물처럼 이름 모를 보랏빛,

그리움이 가을처럼 살며시 피어나 귀한 약속처럼 기다려질 때,

생은 다시 기다림의 기류에 그리움과의 동행을 시작한다.

옛 그리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미래의 기다림으로 설레이는 곳,

하늘과 가장 가까이 맞닿은 태백에서 오래된 미래를 만나고 싶다.

태백의 관문 추전역에 기차가 들어온다.

1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고원의 도시 태백은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높은 곳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하늘 아래 첫 역 추전역이 태백에 있다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기억을 떠올리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연탄이 모든 가정의 연료였을 시절. 연간 이십여 만 톤의 무연탄을

실어 나르던 추전역은 꿈을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였었다.

지금은 제천과 영주를 오가는 열차가 하루에 단 두 대 정차할 뿐 추전역은

더 이상 머무는 역이 아닌 또 다른 만남을 위해 스쳐가는 역이다.

추전역은 떠난 이들이 그립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궁금하다.

추전역에서 내려와 작은 마을로 들어선다.

광부들이 산을 파내며 살았던 그 시절보다 더 오래 전 태백에는

산을 일구며 살았던 화전민들이 있었다.

태백의 산을 의지해 살았던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마을 산기슭을 타고 오르니, 사람 대신 작은 집 한 채가 나그네를 반긴다.

옛 사람이 머물렀던 자리는 시간이 지나도 정겨워 보이고

나비는 예나 지금이나 너와 집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산간 지역 어디서나 흔히 구할 수 있는 소나무.

전나무 등으로 나뭇결을 따라 쪼개어 기화처럼 지붕을 이어 만든 너와집.

너와의 지붕의 이음새 또한 칡넝쿨을 사용하였다.

 

 

 

 

쇠똥을 바른 벽면. 이는 끊임없이 날아드는 벌레들을 막기 위한 훌륭한 방충제 역할을 하였다.

자연과 사람의 집, 그 경계는 없었다.

겨울이 유난히도 긴 태백 산간 지역 짐승들이라고 따로 울타리를 내지 않았다.

사람과 함께 한 공간에서 겨울을 났는데

혹독한 추위에 맞서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은 살갑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었던 게다.

혹한의 생명처럼 지켜야 할 건 또 있었다.

부엌의 아궁이는 음식을 만들 때, 뿐만 아니라 훌륭한 난방 시설이기도 했다.

그 옆에 불씨를 보관하는 화터, 화터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듯한데,

사람은 잠시 자연에 세 들어 사는 건 아닐까

옛 주인을 잃은 너와집은 본래 주인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삶이 일장춘몽이라 하지만 누구나 빛나던 시절은 있다.

모두가 떠나가도 기다림이 있다면 삶은 다시 이어질 것이다.

산길을 걸어 닿은 깊은 산중 문뜩 사람이 그립다.

지붕 넘어 황소 가족이 보이는데 제 집에 온 걸 반기기라도 하는 냥,

송아지 재롱이 여간 사랑스럽다.

계절이 먼저 찾아오는 태백 여름이지만 아침, 저녁은 벌써 쌀쌀한데,

나지막한 지붕 아래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오래된 풍경처럼 다가온다.

오래되어 몸에 익숙해진 것보다 편한 건 없나 보다.

 

 

 

 

10여 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어머니에게 자식들은 도시에서 함께 살자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린 자식을 키우고 남편과 함께한 이 작은 집이 좋았다.

그래도 채워진 자리는 몰라도 떠난 자리는 안다고.

자주 들려 땔감이랑 밭농사를 거드는 자식들이 있어도

남편의 빈자리는 여전히 클 터인데.

여름이지만 소여물에 함께해 줄 물을 따끈히 대우는 할머니.

늦여름 더위 끝이라 불 앞이 힘들 터인데.

할머니는 제 자식처럼 짐승들을 돌본다.

세월을 함께 먹는다는 건 묻어난 정에 쌓여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 아닐까.

늙은 황소 부부는 할머니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제 주인인 줄 아는 것만 같다.

때론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보다 소중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깊은 산 중에선 죄 다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누런 황소 부부는 할머니가 주는 여물은 뭐든 만나게 먹는다.

할머니도 잘 먹어주는 황소 부부가 고맙기만 하다.

손때가 묻고 추억이 묻힌 자리. 남은 이들이 긴 기다림을 이겨낼 수 있는 건

떠난 자들이 남긴 향기 때문 아닐까 한때는 태백으로, 태백으로 몰려들었던 사람들,

그 많던 사람들 지금은 어디서 또 다른 꿈을 일구고 있을까.

 

 

 

 

옛날은 가고 또다시 남은 빈자리 참으로 오랜 시간 떠나는 이와 남은 이들,

모두를 넉넉하게 품어온 태백의 기다림이 할머니가 혼자 읽은 작은 배추밭에서

바람이 되어 밀려온다. 기다림의 바람이 발걸음을 이끈 곳은 태백의 매봉산 해발 천사백 미터 기슭,

높은 곳이라 바람도 강하다 풍력 발전소에서 연간 십억 원 이상의 전기를 생산해 내는데

거친 바람과 험한 돌 뿐인 척박한 땅, 하지만 태백 사람들은 배추 밭으로 일구어 놓은 것이다.

산 위에서 만나는 푸른 바다 하늘보다 푸르다.

바람은 더운 여름 배추가 더위를 먹는 것을 막아주었고,

돌들은 비가 부족해 가뭄 때도 이슬을 머금고 있다가 매일 배추에 수분을 공급해 주었다.

자연은 사람들을 떠나지 않았다.

다만 오랜 시간 인내하며 땀 흘리고 기다려온 사람들에게만 그 넉넉한 품에 안길 길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푸른 밭으로 개간되기 전 이곳 역시 인적조차 드물었을 깊은 산중이었을 것이다.

화전민들도 하나 둘 제 집을 비우고 광부들도.

어느 순간 사라져 갔지만 다시 희망과 만날 수 있다는 태백의 기다림은 사람들을 품어냈다.

비록 여느 곳보다 겨울이 빨리 찾아오고 눈도 많이 오는 터라.

여름 한철 배추 농사 외에 다른 농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그나마 허락된 그 시간이 고마울 뿐이란다.

매봉산 배추밭 넘어 귀내미 골도 출하를 앞두고 막바지 배추 손질이 한창이었다.

귀내미골 사람들에게도 배추 농사는 참 각별한 것이다.

 

 

 

 

댐 공사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이주민들이 다시 마음을 붙여 처음 시작한 일도 배추 농사,

감자 수제비로 소박한 식사를 나누며, 배추가 잘 자랄 수 있는 땅을 일궈 갔고,

고향이 각기 달랐던 사람들도 한 고향 사람들이 되어 갔다.

오랜 세월 함께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고향인가 보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청무 밭이 바다이냐 착각하고 겁 없이 내려앉은 흰나비처럼 이 순간,

살포시 기다림의 날개를 내려놓고 싶다. 세월은 물처럼 흐르고 흘러 참 많은 걸 바꿔 놓기도 한다.

태백지구 일대의 식수 부족으로 이십여 년 전 세워진 광동 댐.

고향 근처 수몰 언저리에 남은 사람들.

노인처럼 옛 추억을 기억하고 있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모두에게 추억은 하나이기에

조금은 덜 외로워 보인다.

태백산의 태백을 그대로 제 이름 삼은 태백은 발길 닿는 곳 어디라도 산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끝없는 기다림의 근원과도 만날 듯하다.

모든 생명에는 그 근원이 있기에 삶의 길에서 문득 근원이 그리워진다.

태백의 깊은 산중에 흐르는 이 작은 계곡물이 바로

우리 내 삶의 역사와 함께 흘러온 오백 리 한강이 시작되는 물의 근원.

검룡소는 일 년 내내 차갑고 투명한 물을 쏟아낸다.

보이지 않고 끊임없이 계곡을 만들며 아래로, 아래로 물을 흘려보내는 검룡소.

작은 물줄기지만 단 한순간도 지쳐서 게으름을 부리거나 쉬어 본 적이 없다.

부지런하기의 생명이다 물의 근원처럼,

내 생명의 근원을 찾고 싶다. 아주 오랜 옛날 하늘의 아들 환웅이 처음으로

지상의 산으로 내려와 하늘로 통하는 사다리를 놓았다는 우리 민족의 신산 태백산.

하늘 길로 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태백산 정상에 오르니 하늘의 제사를 지내는 천재단을 만난다.

단군 조선시대부터 일제 침략 당시 독립군들의 천재단까지

우리 역사의 희로애락을 함께 지켜보아 온 태백산의 천재단.

어쩌면 내 생명의 근원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사랑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생명일지도 모른다.

살아. 천 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주목 삶과 죽음을 한 몸에 지고 하늘을 향한

주목들이 있기에 태백산은 더욱 빛나 보였다.

태백산이 아름다운 이유는 주목만이 아니었다.

여름 한철 피었다 지는 야생화가 천상의 화원을 이룬다.

수줍은 신부의 얼굴, 한결 고운 누이의 미소, 철없는 동생의 웃음,

조건 없는 부모의 마음, 이유 없이 좋은 친구의 위로, 그리고 무작정 그리운 이의 눈빛,

순간이지만 그러기에 더 눈물겹게 정겹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온다.

우리 겨레 국조 단군을 모시는 단군.

성전 극히 신화적인 존재라고 가벼이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단군의 뜻은 신화보다 더 오래 살아서 우리 삶에 중심을 일깨우고 낸다.

근원을 찾아 떠나는 태백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한에서 가장 긴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 연못을 찾았다.

태백산, 함백산의 줄기를 타고 내려온 물줄기가 땅 아래로 스며들어 이룬 작은 연못,

검룡소처럼 황지 연못도 근원지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작은 연못이지만

이 작은 물줄기가 남해 바다에 이르는 거대한 강줄기의 근원이다.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함은 때 묻지 않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염원 같은 것이리라.

황지 연못에서 흘러내려온 물줄기는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넘어가기 직전 구문소를 통과하는데.

구문이란 구멍 또는 굴의 옛말로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이 하천의 물에 의해 뚫어져 형성된 지상 동굴이다.

물이 그 거대한 바위산을 뚫은 것이다.

구문소, 자연 동굴 옆 도로를 내기 위해 인공으로 뚫은 굴이 조금은 낯설어 보이는데.

그 낯선 곳으로 다시 길을 떠난다.

화려한 시절은 지나가고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여전히 삶은 계속된다.

일제 강점기 탄광이 개발되면서 검은 황금의 땅이라 불리던 태백.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태백으로 꿈을 찾아 몰려들었고,

시장도 활기에 넘쳤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사람들은 줄었지만 태백 통리의 시골 장터엔

여느 장터와 다름없는 익숙한 삶의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는데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옛 탄광촌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

철암은 과거의 시간 어느 곳에선가 그대로 멈춰버린 듯하다.

사람들이 떠난 폐광 옛 자리는 바람도 멈춘 듯하고

어두운 막장으로 광부들을 태워주던 광차도 그대로 멈춰버린 지 오래다.

가녀린 목숨이지만 들꽃보다 강하고 아름다웠다.

그 시절이 그리운 건 꿈을 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바람이 분다. 흙보다 자갈이 많은 메마른 땅이지만 물도 주고

걸음도 주면 씨앗을 푸르게 싹을 피울 것이라 믿는다.

 

 

 

 

생명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잠시 잊히고 있을 뿐,

한 뺨의 자투리땅에도 내년 여름엔 옥수수와 감자가 열매를 맺을 것이며.

지나간 옛 기억들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삶의 길에 도반이 되어 줄 것이다.

추억할 일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 기억한다면 잊지 않는다면 초라한 옛 일은 없다.

여행의 끝자락에 구와우 언덕이 해바라기 밭을 찾았다.

기다림이 산언덕이 되어 노란 그리움으로 무리 지어 피어나는 하늘과 땅.

그 시원의 비밀을 간직한 태백, 태백이 아름다운 위에는

오랜 기다림의 인내와 마음속 사라지지 않은 그리움이

언덕이 돼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다시 그 언덕에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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