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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호수처럼 깊어지는 전남 화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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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를 드립니다.

한 여름 뜨거운 햇볕이 한 꺼풀 숙여지는 계절,

가을의 문턱에서 깊어지는 가을을 느끼고 싶어서

전남 화순의 깊은 눈망울을 하고 있는 화순의 호수에서 느끼고 싶었다.

 

 

 

   

화순 땅을 가보셨습니까 방울방울, 누나가 시집갈 때 흘리던 눈물 같은 곳

예쁜 꽃을 그리움에 명치끝이 타고 마음이 갈피를 못 잡을 때면

나는 화순 어느 고유한 숲을 찾습니다.

가을이 먼저 찾아온 호숫가 숲길에 가만히 앉아 봅니다.

한여름을 지낸 나뭇잎이 바람 따라 물결 따라 흐르는 그 곁에서

나도 그 풍경의 일부가 됩니다.

누가 이곳을 단순히 논에 물을 대는 저수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을이 물들고 있는 세량지, 세량지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곁에

산벚 나무와 산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조화롭고 순한 땅, 화순. 화순에서 만난 다랭이.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벼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

 

 

 

 

안녕히 잘 지냈느냐고 사는 일이 즐거운 건 이들뿐인가.

이 계절 모두들 웃음을 머금었다.

모난 몸과 마음을 제법 둥글게 다듬어준 가을의 넉넉함에 경의를 표한다.

울 밑에 핀 봉선화는 언제 봐도 수줍은 새색시 같다.

새색시 시절이 아무리 까마득해도 여심은 늙지도 않은 모양이다.

다정하게 마주 앉아 이제는 투박해진 서로의 손톱에 빨갛게 꽃물을 들여 준다.

다 흘려보내고 이제는 손톱만 한 소망만 남아 있다. 모처럼 설레는 황혼의 가을.

서로 우리만큼 아름다운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허허로운 마음을 의연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달래준다.

지상에서 육백 년을 살아냈어도 여전히 꿈틀꿈틀 살아서 출렁이는 나무의 생명력이 부럽다.

해마다 어김없이 약속을 지키는 정확함도 나를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기꺼이 제 몸 한구석을 이기에 내어주며 공존하자고 말한다.

여름이 지나간 자리, 문뜩 너의 안부를 묻고 싶다.

이제 마음을 가라앉히면 된다.

 

 

 

 

불쑥불쑥 그리움이 고개를 쳐들면 천천히 눈을 떠 수련을 바라보라.

가을 물빛 속의 그리움이 열린 가지가 되어 손을 흔든다.

맑은 신의 물이 자연도 품고 사람도 품었다.

어쩌면 평생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여인은 이 냇가에 살면서 한결같은 나날을 흘려보냈다.

허나 살면서 어찌 마음의 파문이 일지 않았겠는가.

그럴 때면 이 시냇가로 나와 뜨거운 마음을 시키고 돌아갔으리라.

다시 길을 나선다. 알 수 없는 뭔가에 이끌려 나는 더 깊숙한 곳으로 간다.

눈으로 보는 거리와 마음으로 보는 거리는 대체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동복호 저편 호수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화순 적벽이 아득하다.

 

 

 

 

갈 수 없는 나라처럼 슬픈 빛을 머금은 호수 동복호엔

고향이 물에 잠긴 수몰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왜 하필 이곳이었을까

누군가는 죽어서도 고향이 보이는 곳에 잠들기를 간절히 원했던 모양이다.

고향을 잃어버린 망향의 한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거칠게 자란다.

기다림이 끝나는 날이 오지 않을 것을 알지만 자꾸만 무언가를 기다리는 심정이 된다.

동복호는 그림같이 아름답지만 그에겐 너무 아픈 상처다.

세상에 이렇게 변했을 거 아니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제는 갈 수 없는 고향 온 동네가 빈 집 같은 허전함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

상처를 안고 있는 호수가 나직이 속삭인다.

 

 

 

 

초주검이 된 마음, 밭에서 더 굳센 마음이 자라는 법이라고

굳게 닫힌 마음에 창을 내기로 한다.

그 창으로 보드라운 가을볕을 들이리라.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작업장에서 목수가 나무를 깎는다.

나무를 다루는 목수 중에서도 가구를 만드는 장인을 소목장이라 부른다.

장인은 5밀리미터의 나무를 반으로 가른다.

손에 나무를 잡고 있을 땐 무섭게 집중하지만 마음 편한 얼굴이다.

얼마나 많은 숨결을 불어넣어야 이렇게 쓸모 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일까.

소목은 나무 성질을 조화롭게 이용해 무늬와 결을 살린 가구들이다.

채색도 거의 하지 않고 콩기름이나 동백기름으로 은은하게 기쁨을 살렸다.

가을볕이 드는 마당에서 나비의 너울 거리만큼이나 황홀한 날갯짓을 본다.

날개는 오색으로 물을 들였다.

 

 

 

 

이른 아침 이슬에 젖었을 때, 꽃을 따서 말린 홍화가 홍화를 잿물에 담그면

노랗고도 붉은색이 녹아내린다.

그 어떤 인위적인 색도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한 자연의 색이다.

누군가를 물들이고 싶어도 나는 나를 고집했다.

누군가 내게 진정으로 물들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연에서 온 색들은 수 없는 많은 색들이 있는데 그 색의 어울림을 봤을 때

각자 색이 자기를 좀 낮추고 상대의 색을 수용해주는

그러니까 끌어안아주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감정적으로 느껴질 때 은은하다.

아 편하다 이런 감정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살며시 오신 고은님, 가을바람에 물결인 마음을 내어 말린다.

마음이여, 홀로이듯 뒤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곱고 여린 색감으로

물들 수 있음을 나는 화순에서 알았다.

 

 

 

 

이제 나는 내면을 키워 내 안에 좀 더 환하게 불을 밝히고 싶다.

계절은 어느 한 날 한 시도 무표정하지 않다.

가을이 물들어가는 화순 땅.

이곳에서 만난 부드럽고 순한 얼굴에 나는 한참을 낯설어했다.

무엇이 그리 생경했을까.

깊어가는 고요한 호수처럼 이 가을 나는 더 넓고 깊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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