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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 여행

멋지고 잘된 은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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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드립니다.

화려함 속에서 그 틀을 벗어난다는 것은 마약과도 같이 힘들다고 하는데,

대중의 영웅으로 대접을 받았던 사람이 은퇴를 하여 가정으로 간다면,

그 영화를 못 잊어 방황하는 경우가 맞죠.

그것은 적절한 시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수를 받을 때 떠나라고 했듯이, 적절한 시기에 그 장소를 떠났으면 합니다.

여러분은 가장 멋지고 잘된 은퇴가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황제’라는 칭호로도 부족해 ‘신(神)’으로 불렸던 사나이.

1999년 1월 은퇴를 선언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입니다.
당시 전 세계 청소년들은 미국 대통령은 몰라도 마이클 조던이 누군지 알았죠.

신들린 듯 고공을 날아다니며 NBA 통산 6회나 정상을

밟은 농구 황제가 갑자기 고향으로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그의 은퇴 회견은 대통령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전 세계 매스컴은 온통 조던 얘기로 시끌벅적했습니다.
한 언론은 “미국인들은 조던 대신 클린턴이 물러나기를 원할 것”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에게 쏟아진 세계의 찬사를 보면 그는 농구 황제를 넘어 현대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메신저였습니다. 

그 자신이 감동을 던져준 한 편의 시였으며, 관중을 사로잡는 위대한 배우였습니다.

 

 


 
세계의 팬들은 그를 흑인도 미국인도 아닌 ‘조던’으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조던의 은퇴를 놀라워한 것은 그 엄청난 부나 명성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코트를 떠나는 두 가지 이유가 아름다워서입니다.
첫째가 “인생의 새로운 기회를 갖고자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
둘째는 “예전처럼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고도 계속 머무는 
바보짓은 않겠다”는 것.
그 고별사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팬들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며 진정 미안해 한 표정에서는 

스타 이전에 따스한 사람의 체온을 느끼게 해 주었지요.

전설로 돌아선 ‘농구의 신’ 조던을 빛낸 건 그의 멋진 은퇴입니다.
그는 발을 넣을 때와 뺄 때를 정확히 짚어 결단을 내렸지요.

그것이 진정한 지혜이고 용기입니다.

조던은 ‘그침을 알아 그칠 때 그치는 것(止知止止)’ 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 이치를 알고도 내려놓기가 어려운 것이 권력이고 경영권입니다.
우리는 권좌에서 내려오기를 미적대다 일생을 욕 되게 하거나

경영권을 둘러싼 재벌가의 피 튀는 싸움을 보아왔습니다.
특히 창업 세대가 떠나면서 많은 재벌가의 경영권 승계 싸움이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

모범을 보인 곳이 LG였죠.
LG, GS, LS로 분리한 후 
4대째 잡음 없이 경영 승계하는 멋스러움을 실천했으니까요.

1995년 구자경 회장이 구본무 회장에게 자리를 물릴 때가 70세.
은퇴로는 이른 나이에도 결단을 내리고 창업세대를 이끌고 동반 퇴진하는
전통을 세운 것은 한국 재계사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경영 승계를 육상 계주에 빗대었던 구자경은 ‘멋진 은퇴’라는 소리보다
‘잘된 은퇴’가 되기를 소원한 분입니다.

 

 


 
LG가 새 경영체제로 일신하고 얼마 되지 않을 때 트윈타워 꼭대기에서 경사가 벌어졌습니다.

깃들어 살던 황조롱이 한 쌍이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이 TV 카메라에 잡히면서 화제가 되었지요.
LG는 이를 길조로 받아들였고 조류도감을 펴낼 만큼 새를 좋아한

구본무 회장이 황조롱이를 보호하라는 특명을 내립니다.

그 바람에 별도 팀이 급조되기도 했지요.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어미와 새끼가 안팎에서 동시에 쪼아대야 합니다.

이를 ‘졸탁’이라 하는데, 이를 두고 LG의 경영 승계가 잘 됐다는 한 줄 해석을 더하게 되었지요.
봄이 되자 새끼 황조롱이 6마리가 날기 훈련을 시작했어요.

새끼를 물고 어미 황조롱이가 하늘 높이 올라가 떨어뜨린 후

어느 지점에서 새끼를 낚아채는 매서운 훈련입니다.
결국 훈련에 실패한 4마리는 추락해 죽고, 남은 2마리만 어미를 따라 먼 길을 찾아 날 수 있었지요.

만남과 이별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들고 나는 것은 선택입니다. 문제는 타이밍이지요.
고속도로에서 출구인 나들목을 놓치면 이런 낭패가 없습니다.

그래서 권좌에 앉는 사람에게 “축하는 들어서는 자리가 아니라,

나가는 자리에서 받아라.”하는 경구가 생깁니다.

 

 


 
출구를 놓치고 개고생 하는 사람,
선택을 미적대다 생을 그르치는 사람,

인생에서 ‘성공신퇴(成功身退: 성공하면 나갈 때를 준비함)’가 그리도
힘든 일인지, 욕심이 눈을 가리면 보이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격은 가난에서 나오고 인간은 수양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내 능력이 100이면 80쯤에 맞추어 삽니다.

그러다 어느 나이가 되면 유한한 인생의 철리를 깨닫고 스스로 권좌에서 비켜섭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반대죠. 욕심에 관성이 붙어 가속페달을 밟습니다.
그때 제동을 걸지 못하면 순간에 100 이상의 과욕 스캔들에 휘말리고 

‘내로남불’ ‘아시타비(我是他非)’라는 저급한 인간이 돼버리죠.
사람들은 언제라야 나들목을 제대로 찾아 나가는 지혜를 깨칠까.

모든 사람들은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에 깨닫고 간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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