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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Issue)/스포츠

1960~70년대 레슬링계를 풍미를 했던 안토니오 이노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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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The Best Life) 인사를 드립니다.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 것 같습니다. 레슬링의 인기의 창을 열었던 대한민국의

김일이 사망하고, 오늘(10월 1일)은 한, 일의 양대 산맥이었던 이노키가 사망을 했다.

흑백 TV의 영웅이었던 그들은 그때 당시의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다.

지금은 50 후반에서 6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안토니오 이노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일과 더불어 ‘한·일 프로레슬링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던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거장 안토니오 이노키(79ㆍ본명 이노키 간지)가 1일 심부전으로 사망했다고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 매체들이 보도했다. 외신에 따르면, 이노키는 194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이후 브라질에 이주했으며, 현지를 방문한 역도산에

의해 스카우트돼 일본으로 귀국한다. 이후 일본 프로레슬링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노키는 김일, 자이언트 바바와 더불어 1960년대 일본 레슬링계를 풍미한 인물로

꼽힌다. ‘불타는 투혼’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으며, 그를 계기로 많은 후배 스타들이

일본 프로레슬링을 이끌었다. 국내에서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거장인 김일과의 경기로

잘 알려져 있다. 1960년 9월 데뷔전이 김일과의 첫 대결이었으며, 이날 경기에서

이노키는 김일에게 패배한다. 그 이후로도 두 사람은 여러 차례 대결한다.

 

 

 

 

이노키는 또 정치인으로도 활약했다. 그는 1989년 스포츠 평화당을 창당해 참의원에

당선됐으며, 1995년 참의원 선거 낙선 후 정계를 은퇴했다. 이후 18년만인 2013년에는

참의원에서 일본유신회 비례대표로 당선되기도 했다. 그는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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