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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동학의 향내가 품어나는 전북 정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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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이라는 지명도 기억에는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정주라는

지명으로 내장산을 배경으로 홍보 판이 크게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정읍으로 지명 이름이 굳어져 있는 것 같다.

정읍은 국립공원 내장산이 있어서 모든 것이 화려한 것만 있을 것 같지만

그 속엔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수많은 백성들이

총칼에 죽어 갔는지 모른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내면적인 정읍을 통해

화려함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정읍 내장호

 

 

얼마나 사랑했는가?

온산을 뒤덮었던 붉은 열기를 다시 오지 않을 듯 서럽게 보낸 가을을

생기를 잃고 하나둘 잊혀간 옛 기억 속의 이름들을 난 얼마나 사랑했는가?

정처 없이 떠돌던 마음이 빈 나무 아래로 내려앉는 계절 고마운 얼굴들이

따뜻한 밥 한 그릇처럼 그립다.

만추를 떠나보낸 산들은 깊은 명상에 잠겼다.

 

 

 

 

때로 멀찍이서 바라보며 생각을 안으로 거두는 일이 절실할 때가 있다.

끊임없이 채우며 살아야 하는 삶에서 침묵은 불필요한 세상의 짐들을 털어준다.

다 두고 혼자 걷는 겨울 숲 조급하게 내뱉었던 말과 허물들이 제 몫의 무게를 싣고

천천히 흘러간다. 본래의 나는 얼마만큼의 질량과 의미로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답을 얻는 길은 매일매일 낙엽처럼 쌓이는 욕심과 부끄러움을 마음에서 쓸어내는 데 있다.

 

 

 

 

초겨울 산사의 목탁 소리가 사방으로 흩어진 마음을 한 곳으로 모은다.

산도 나무도 모든 염원도 그 앞에서 숨을 고른다.

마음도 거울처럼 자주 닦고 들여다봐야 제 모습을 잃지 않는 법.

삶이 다하는 날까지 허공에 매달린 빈 가지처럼 마음에 불을 밝히면

부끄럽지 않은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

 

 

 

 

해마다 음력 시월 보름이면 선방의 동안거가 시작된다.

석 달간의 면벽 수행과 무언을 통해 깨달음을 찾아가는 겨울 수행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고요함 속에 던져놓으면 아무 내색 않는 큰 바위가 된다.

그리하여 생은 격렬함을 지나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여유를 갖는다.

그리고 비로소 욕망의 끝을 본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삶에 충실하고 죽음 앞에서 꼿꼿할 수 있다면,

떳떳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이 끝나감을 독백처럼,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질 수만 있다면, 비록 몸은 사라져 옛 기억 속에

묻히더라도 그 당당함으로 메마른 땅에 새로운 생명을

싹 틔우는 희망의 기운으로 다시 살아났으면,

 

 

 

 

산사를 내려와 맞은 세상의 아침.

다시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일상이 시작됐다.

반복되는 삶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마음의 수행은 무엇일까

단순한 것에서 오는 삶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발견해 가는 일.

 

 

 

 

초겨울의 햇빛을 끌어안은 들판,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했던가?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도 그만큼의 불길을 견디면 사그라들듯이

가난이 돌처럼 짓누르던 삶 지독한 배고픔보다 더 아팠던 건

두 아들의 가슴에 묻은 일이었다. 힘든 기억들은 아직도 집 안에 서성인다.

세상을 향한 설렘과 기다림은 고된 삶으로 생기를 잃은 지 오래다.

지평선 가득 펼쳐진 배들 평야는 예로부터 호남 최대 곡창지대였다.

 

 

 

 

그러나 백십여 년 전 이 땅은 농민들의 울분과 설움이 뒤섞인 곳이었다.

당시 학정과 수탈이 극에 달하면서 뱃속의 아기, 죽은 아비에게도 세를 물렸다.

분노한 농민들은 무지렁이 농투성이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불씨를 댕겼다.

전봉준의 지휘 아래 흰옷의 죽창을 든 농민들이 들끓는 분노로 두려움을 삼키던 밤,

그들은 이미 새로운 역사의 주인이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은 평등해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들,

그들이 바랐던 건 자식들 배불리 먹일 따뜻한 밥 한 그릇과

농사일 마친 해 걸음에 막걸리 한 사발로 위안을 얻는 소탈함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품었던 새 세상은 오지 않았다.

혁명이 실패한 후 정읍의 빼앗긴 봄은 오래도록 계속됐다.

전봉준과 함께 농민혁명을 주도했던 김개남 장군의 집.

조상이 동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후손들은 오랫동안 온갖 연좌와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 역적의 소굴이라 하여 집들은 불탔고 사람들은 잡혀갔다.

한때 전라도 일대를 평정했던 김개남 장군, 오랫동안 잊혔던

그의 흔적은 불과 십여 년 전 복원됐다.

 

 

 

노인의 부모 역시 숱한 고초와 가난에 시달리다 힘든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선조들이 온몸으로 맞섰던 동학의 정신은 대지 깊숙이 살아있다.

이름 없이 쓰러져 간 농민들은 풀과 나무와 새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야 했던 상처 입은 땅을 보듬는다.

시간과 계절이 지나도 핏줄은 땅과 더불어 살아간다.

고마운 기억은 온몸을 녹여주는 더운물처럼, 모락모락 시린 들판 위로 피어난다.

무서리 내린 아침, 서리 맞은 국화가 얼굴을 내밀며 활짝 웃는다.

정읍의 들판에 서면 그리운 얼굴들이 애타는 손짓으로

서로를 불러들여 그렇게 만나고 모인다.

 

 

 

 

시련에 넘어지지 않고 삶과 죽음에 충실했던 이들이 지켜낸 땅.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정읍 땅은 충만하다. 긴 겨울을 지나 찾아올 새 봄,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나를 따뜻하게 덮여줄 옛 기억 속 이름들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본다.

기쁘고 즐거웠던 것이 아니라 사무치도록 고통스러웠던 옛 선조들의 마음을 갖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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