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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희망을 전하는 섬 통영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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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드립니다.

요즘 여행을 떠날 때에는 부의 논리에 의해서 쉽고 편하게 관광을 다녀오시는 분,

그렇지 않고 경제성을 고려하여 검소하게 다녀오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여행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수박의 겉핡기처럼 눈에 보이는 부분만 갔다 온 후에 다 이해한 것처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죠. 마치 물위의 잔잔함을 보면서 잔잔한 물결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행은 잔잔한 물결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물속의 소용돌이치는 내면을 보면서 경험하고 표현하고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이번, 희망을 전하는 섬 통영을 가면서 진정한 여행을 경험하게 되었다.

 

 

 

 

통영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무더위가 세상을 지치게 하는 밤,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은 생명력 있는 빛깔을 내고 있었다.

여름의 한 가운데 사람들은 통영의 야경에 낮에 번잡함과

밤의 더위를 잊는다. 통영은 묘하게 사람을 위로하는 매력이 있었다.

고운 통영의 밤 풍경은 통영 팔경에 들어갈 정도로 그 풍광이 손에 꼽힌다.

팔색조처럼 다양한 통영의 빛깔은 밤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침볕이 들자, 화려함 이상의 수려함이 그 자리를 메운다.

통영과 충무. 육지의 두 개 도시가 만나 통영이 된 이곳엔

한려수도 백오십 개 섬이 더해져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그 이야기 속에 잠시 복잡한 세상 삶을 뉘이고 쉬어갈 수 있을까.

여명이 발길을 거의 거둘 무렵 통영의 아침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머니 모양의 해안선 안엔 강관이라 불리는 통영의 중심지가 오밀조밀하게 놓여 있다.

간밤에 할 일을 마친 강구의 어선들이 쉬는 사이 서호시장이 싱싱한 아침을 연다.

희망을 전하는 섬 통영을 통해 삶은 일반 서민들의 외침으로 시작된다.

 

 

 

 

서호 시장은 오전에만 열리는 아침 시장이다.

지난밤의 수확은 서너 시간이면 동이 난다.

전국에서 맛볼 수 있는 활어의 대부분도 통영의 고향이다.

그야말로 이름 있는 수산시장이다 시장의 안주인은 바로 할머님들이다.

사는 집이 바뀔지언정 기억해주는 손님을 맞는 이 자리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월을 보낸 자리라고 하기엔 턱이나 검소하다.

이곳에서 오백 원, 천 원을 모아 아이들을 도시에 대학에 유학시키고,

시집 장가도 모두 보냈다.

할 일을 마치고 나니 이제는 내 몸 하나 돌보면 그만이다.

젊은 시절에 사나웠던 욕심도 기력을 잃은 지 오래고 인심이 대신 늘었다.

하지만 밥벌이의 고단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서호 시장 옆 해저터널 또한 깊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천구백삼십이 년 일본인 통영 군수에 의해 지어진 해저 터널은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이다.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의해 전멸했던,

왜군들의 치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해저 터널은 그 험난한 역사처럼 서늘했다.

터널을 빠져나와 닿게 되는 곳은 미륵도,

 

 

 

 

미륵의 의미를 생각하면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미륵도에 위치한 용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어졌다.

화재로 잃었으나 조선시대 다시 지은 것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용화사에서 바로 보이는 산은 통영의 소산인 미륵산이다.

믿음은 살고자 할 때 지속된다.

그래서 믿음은 본래 고달픈 삶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이자,

내일을 바라보며 오늘을 견디겠다는 각오다.

아무리 지난날 삶일 지라도 생애 한가운데엔 언제나 희망이 존재한다.

마치 짙은 안개와 구름에 가려져 있다 해도 그곳엔 그 섬과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믿는 것처럼,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곳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미륵도를 지나 만난 곳은 연화도, 연꽃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늘 아래 귀하지 않은 생명이 없다.

연화도를 지나면 욕지도를 만난다. 욕지란 말은 알고자 하거든 이라는 뜻과

욕심이 그친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욕심을 버리는 방법을 알게 되는 곳이란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구도를 얻기보다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관광객이 많이 든다.

희망을 전하는 섬 통영을 통해 역사의 쓰라림이 해저터널 속에 묻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거북 바위와 삼여도도 그러하다 바위섬이 말하는 것이 혹시 육지의 의미는 아닐까.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한 욕지도 말복의 더위에도 이십오도 언절이다.

욕지도의 생이 그렇다. 구름 지나가는 듯 바람 흘러가는 듯,

희로애락을 굳이 과장하지 않는다.

구태여 잔손을 대지 않아도 고구마는 햇빛을 먹으며 자라고

짐승은 알아서 제 먹이를 찾으며 스스로 큰다.

모든 것이 소리 없이 꽃을 떨구고 열매를 만든다.

순리를 따라 사는 사람에겐 희로애락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외로움도 당연하고, 이곳을 지키는 이유래야 별다를 것도 없다.

마치 묵힐수록 스스로 깊은 맛을 품어내는 장까지도...

욕지도의 삶은 원래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다.

희망을 전하는 섬 통영을 통해 자연의 은혜가 얼마나 큼을 알 수 있었다.

 

 

 

 

욕지도에서 다시 통영으로 돌아가는 뱃길

바다 한가운데 거북선 모양의 등대가 눈에 띈다.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지어진 든데 다,

여행의 끝자락에 충무공의 옛터를 찾아보기로 했다.

통영 해안선 가까이에 유적이 있었다.

 

 

 

 

제승당이다. 제승당은 충무공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총사령 본부였던 곳으로

적의 동태를 보기 위한 수루도 함께 있다.

수루엔 수정의 고뇌가 담겨 있는 한산도가가 적혀 있다.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는 괴로움이 위인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나라의 운명을 짊어졌던 충무공의 무거운 어깨를 현세는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무심한 듯 흐르는 통영 앞바다 이 푸른 바다가 붉디붉은 빛으로

물들었을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 섬 앞에 지금의 사람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희망을 전하는 섬 통영 속에서 나라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다.

 

 

 

 

역사는 우리의 정서 속에 살아 있었다.

참으로 모질게 독하게 살아온 시절들 통영이 말하는 것은

어쩌면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

오늘은 해가 지지만 얼마 있지 않아 곧 다시 해가 뜬다는

그런 뜻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물어도 파도는 대답하지 않는다.

어쩌란 말이냐고, 아무리 외쳐도 바다는 묵묵할 뿐이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 답을 찾았다.

 

 

 

 

그래도 한 번 살아볼 만하지 않겠느냐고 고된 마음을 추슬렀다.

역사 위에 쓰여진 통영의 삶이 그렇게 희망의 증거를 말하고 있다.

인생의 길은 바로 우리의 역사이며 나이테이다.

우리가 멀리 가면 갈수록 역사의 창고에 분량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여러분은 안전을 위해 서있겠습니까? 파고를 뚫고 나가는 도전을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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