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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매화꽃과 함께 섬진강 길을 여는 전남 광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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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를 드립니다.

춘서를 퍼부었던 삼월, 그러나 시간은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

꽃이 만든 풍경은 춘정을 불러낸다. 겨우내 움츠렸던 아낙들이

춘정에 겨워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언덕을 넘어선다.

시리도록 흰 꽃눈을 열어 제일 먼저 시린 겨울을 녹이는 건 매화다.

매화에서 산수유까지 꽃길을 열어준 것은 섬진강 물길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물길, 꽃길, 사람의 길이 거기 섬진강을 따라 흐른다.

이제 낡아버린 모든 것이 떠난 시대에 섬진강엔 아직 낡은 나룻배가 오간다.

 

 

 

 

빠른 버스를 타는 대신 쉬엄쉬엄 피아골 나루를 건너는 나이 든 토박이들이다.

대를 이어 섬진강을 건너며 이들은 숱한 사연과 숱한 풍경을 떠나보냈다.

가난하고 힘겹던 시절엔 섬진강도 그들 곁에 더 가까이 있었는데,

빛나던 나룻배가 낡아지는 사이에도 섬진강은 늘 거기에 있었다.

그 강물 위로 다시금 꽃샘바람이 분다.

봄인가 싶었는데 다시금 혹독한 바람이다.

섬진강변에서 제일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건 매화들이다.

 

 

 

 

긴 겨울을 이겨내고 늙은 가지마다 매달린 선비의 꽃, 매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며 이 봄 매화의 보들한 다섯 꽃잎들은 유난히도 실린

꽃샘바람을 견뎌낸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과 마주한 자리에

광양 백운산이 있다. 앞에는 매화를 키우고 산등성이엔 고로의 나무를 키우는데

백운산 깊은 계곡도 꽃샘바람에 어깨를 낮추고 있다.

흙은 녹았을까. 고로쇠들은 한껏 물을 빨아올리고 있을까.

 

 

 

 

자연은 봄의 희망을 전한다.

꽃샘바람에 마을에선 산수유 꽃이 얼어붙는다고 염려드리지만,

이미 꽃봉오리를 열어둔 산수유들은 차가운 계곡 속에서도 제법 꿋꿋하다.

새싹들 속에서 산수유는 더 노랗게 빛을 바란다 햇살이 힘을 얻고 흙이 풀린다.

자연이 준 선물로 풍성한 봄이다.

하동 쌍계사에서 깊은 골을 따라 오르는 길, 골짜기 끝에선 아담한 야생 차밭이

봄볕에 익어가고 있다.

 

 

 

 

지리산 골짜기까지 흠뻑 와닿은 봄의 햇살.

봄볕은 더디게 왔지만 지리산 골짜기의 느린 시간 속에 차양은 더 깊어지고

있을 것이다. 길고 세찬 꽃샘바람을 이겨낸 섬진강 매화마을,

섬진강이 열어준 꽃길 위에서 살아온 사람들, 매화 마을을 찾은 외지인들은

봄날의 매화를 볼뿐이지만 거기엔 꽃보다 아름다운 꽃보다 여린 삶들이

녹아 있을 것이다. 홍쌍리 할머니가 키워낸 매화밭엔 임권택 감독의

백 번째 영화 천년학의 무대가 서기도 했다.

 

 

 

 

이왕이면 제대로 된 매화를 찍으라며 홍쌍리 할머니가 원형 그대로의 새집을

복원해낸 것이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보면 옛사람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쓰러지는 흙담에 봄의 보리고개를 넘으면서도 매화향, 봄 향기 속에 모두들

마음만은 너그럽고 여유로웠을 것이다. 시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매화나무를

심은 지 44년 어느덧 허리가 굽은 홍쌍리 할머니는 지난 사십사 년이

가르쳐준 매화 사랑법을 이제 하나 둘 며느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건강한 봄이 어김없이 우리 앞에 와 있듯이 건강한 생명을 만드는 매실 또한

어김없이 사람들의 밥상 위에 올려져야 한다. 대를 이어 온 몸으로 일하면

매화들도 튼실하게 대를 이어가지 않을까. 섬진강을 바라보며 눈물짓던 새댁은

참으로 긴 세월 모성을 다해 매화꽃을 피워냈다.

매화꽃 흰 저고리에 연두 치마를 입히듯 그 이는 화학 비료를 대신해 보리와

맥문동을 키웠다. 매실 전도사가 되어 병약한 사람들의 걱정도 덜어주었다.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것이 섬진강이다.

그 긴 세월을 지켜보아 준 것이 섬진강이다.

섬진강 강변에서 벚꽃까지 저물면 섬진강은 다시금 재첩으로 풍성해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차고 시린 강물.

아직은 꽃샘바람이 채 수그러들지 않은 때에도 섬진강의 누군가는 찬물에

몸을 담그고 재첩을 거둬들인다. 지리산을 휘돌아 남해로 흘러 들어가기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맑은 물길로 흐르는 오백오십 리 섬진강, 그 강물이

열어준 꽃길 위에서 매화와 산수유는 이제 더 환한 봄을 재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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