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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22호선 국도 화순에서 영광까지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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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인생의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어디를

밟고 다니는 그곳 자체가 자신의 역사요. 나이테가 되고 있는 것이죠.

지금 가고 있는 22호선 국도도 그 지역을 통과할 때마다 자신의 머릿속에는

원대한 파노라마를 만들어 주고 있다. 그것 자체가 역사인 것이다.

그 역사를 오늘도 발걸음을 옮기며 시작하고 자 한다.

 

 

 

 

내 앞에 봄이 서 있다. 세상 풍파와 나이 든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계절은 마른 내 가슴에 부드럽게 안긴다.

아름답다. 소문난 남도 여정의 초입, 내장산을 비껴 흐르는 22번 국도,

여행의 출발은 한들한들, 산들산들 거슬릴 게 없었다.

설렘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모두 밟고 돌아가는 순간,

나는 기대한다. 어느덧 달라져 버린 낯선 나와의 만남을...

 

 

 

 

솟대의 유래는 기원전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솟대라는 말 자체가 삼한의 성지인 소도의 발음이 바뀐 것이다.

그러니 장승보다도 오래된 민간 신앙이 바로 솟대다.

솟대를 만드는 일은 그다지 복잡해 보이지 않았다.

나무를 베어와 껍질을 벗겨내고 솟대 끝 부분에 매달 오리 형상을 깎는 것이 전부다.

굳이 오리를 올리는 이유는 철이 되면 오가는 이 날짐승이 인간과 신의 세계까지

넘나 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리주둥이에 대나무 수염을 물리면 솟대는 완성이다.

요즘은 부녀자들도 소대를 세우는 데 참여한다 주민들의 수가 그만큼 줄었다는 뜻이다.

재해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에게 솟대는 간절한 바람이자 질긴 희망이었다.

 

 

 

 

시야 가득 평온함이 넘쳤다.

정해진 순서를 쫓아가는 것은 나나 이들이나 다르지 않는데 어찌 이곳의 풍경은

이토록 고요한가 여정을 계속해야 할 이유였다. 화순 사람들은 물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마을 주민들의 건강은 샘터가 지킨다고 했다.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알려준 대로 이곳을 봤더니 물길은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푸근한 사람들을 만난 덕에 오래 머물렀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화순 사람들을 닮은 유적지가 눈에 들어온다.

화순의 고인돌은 지난 2천 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약 60만 평의 땅에 자그마치 600개의 고인돌이 산자락을 따라 누워 있다.

청동기 때의 모습에 별다른 훼손이 없다.

까마득한 시절부터 내려온 관습을 지키는 모습은 남도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22번 국도를 따라 다시 길을 나섰다.

가다 쉬고, 보다 멈추고, 누군가 앞서 걸어간 길에서 나를 돌아보는 게

여행의 목적일지도 몰랐다.

 

 

 

 

22번 국도는 화순을 지나 영광으로 닿아 있었다.

무고한 시간 동안 계속되어 왔을 여정에서 누군가는 내가 보지 못한 것에 자극받고

또 귀 기울였을 것이다. 지나치면 단편적인 기억으로 남겠지만 잠시 들여다보면

기대하지 않은 무엇을 만날지도 모른다. 굴비의 명성답게 마을 곳곳에 조기를

말리고 있었다. 고려 때부터 영광 굴비가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데엔,

이곳만의 독특한 염장 방법이 큰 몫을 했다. 소금물로 간을 하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영광은 소금을 직접 뿌려 잰다. 그 맛이 어찌나 일품이면 절 받는

물고기라고까지 불렸다.

 

 

 

 

소금에 절인 뒤엔 여느 곳처럼 물간을 한다. 이슬과 바다 바람을 맞으며

조기는 선인들의 방식대로 굴비가 된다. 30년 전만 해도 바로 앞마당까지

조기 울음이 들렸다고 하는데, 개구리울음을 닮았다는 그 소리는 이제 흔적을 감추었다.

그러나 기억하는 이가 있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영광의 맛에 대한 추억을 지키는데

염전까지 나서서 한 편이다. 염산이란 말은 말 그대로 소금산이라는 뜻이다.

농지보다 염전이 더 많았을 거라는 넋두리엔 쓸쓸함보단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땅이 안개를 덮고 잠들어 있다.

해가 떠오르는 기척을 듣고 안개가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한다.

자연의 대화는 이렇듯 완벽하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나는 소통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왜 나 있던 곳을 뒤로하고 낯선 곳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에 감탄하는가?

인간의 말보다 자연의 언어가 가슴속을 파고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해받지 못한다고, 외롭다고, 왜 언제나 투정했던가?

 

 

 

 

마지막 목적지는 불갑사였다.

불교가 처음 들어왔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불갑사.

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인도의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고려 후기엔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지만,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는 불운을 맞았다.

그러나 대대적인 중건이 최근까지 계속돼 이렇듯 과거의 위용을 간직하고 있다.

생로병사의 비극과 희극이 윤회의 사슬처럼 이어져 내려가는 억겁의 시간,

하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오늘도 태양은 얌전히 제 맡은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봄이 오고 가지에 꽃이 피면 나무가 아름다워 보이느냐고 누군가 물었다.

꽃은 겨울 동안 나무 안에 있었을진대 어찌 겨울에는 꽃을 보지 못했냐고 내게 물었다.

이제 조금은 알겠다.

부끄럽고 아파하고 신음하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예쁜 존재라는 것을...

진정한 여행은 이런 기분으로 몸은 피곤하지만 저절로 발걸음을 옮겨 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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