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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비가 오는 봄날에 문과 예로 풍성한 충남 예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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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The Best Life) 인사를 드립니다.

일은 봄날 햇살처럼 무작정 쏟아지고, 사람은 가을 기러기처럼 불현듯 찾아온다.

일에 지치고 사람이 그리워질 때, 또 다른 인생의 이야기가 있는 곳,

새벽안개처럼 그리운 충남 예산이 있다.

예산은 삼백육십오일 큰 물을 품고 산다. 사십 년 전 우리나라 최대 저수지가

이 땅에 등장했을 때를 아는 이는 문득문득 가슴 아린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멀리 가야산과 덕숭산이 품어 안고 있는 넉넉한 땅, 물이 있어도 거세지 않고

산이 높아도 험하지 않은 예산 한 자락이 저수지에 잠긴 뒤 사람들은 터전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또 그 여유로운 품성으로 고된 세월을 이겨냈다.

 

 

 

 

 

새벽안개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부부

농사를 천직으로 알았던 아버지와 달리 민물고기를 낚는 어부가 되어

청춘을 보냈다. 인생의 반은 땅을 딛고 반은 물에 잠겨 살았다.

어부네 집 마당에서 작은 잔치가 벌어졌다.

어릴 적부터 해온 익숙한 솜씨로 비늘을 걷어낸다.

저수지를 끼고 사는 이 동네 남자들은 이런 일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어죽을 끓일 참이다. 어죽은 작은 냄비로 끓이면 제 맛이 나질 않는다.

수제비도 넣고 국수도 넣고 텃밭에서 가져온 파와 깻잎 등 야채까지 모두 넣고

걸쭉한 매운탕 어죽을 만든다. 그래서 예산의 어죽을 사람 불러 모으는 음식이라

했던가 작은 정성을 모아 죽 한 솥 끓이고 한 그릇 나눔으로 한 숨을 접고

지친 어깨를 기대어 왔다. 어죽 한 그릇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 땅의 사람들이다. 예산에선 굳이 무엇을 바라고 사냐고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소박한 삶 속에 지혜가 있다.

 

 

 

 

예산 땅에 사람들이 들어와 산 것은 이천 년이 넘은 듯하다.

백제의 땅 풍요와 멋을 즐기던 백제의 흥망성쇠를 안타까이 지켜보던 땅에

세월을 넘어 꽃이 피고 한결같은 목탁 소리가 산자락을 뒤덮는다.

수덕사가 처음 들어선 것은 서기 599년 국내 최고의 목조 건물로 손꼽히는

대웅전만 해도 700년을 족히 헤아리는 고찰이다.

칠백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어찌 처음만 같을까 싶지만 버티고 선 나무 기둥은

꿋꿋하고 단단해 보인다.

 

 

 

 

마음의 뜻은 산처럼 높아도 일상의 걸음은 장터에 있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제일 눈길을 모으는 것은 어린 강아지들이다.

예산 읍장에선 2~30 년쯤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세월이 흐르면 예전 것은 가고 새것이 오는 것이 세상 잊히련만 예산에는

무명천을 널어놓은 듯 국 숟가락 쭉 늘어서 있는 추억의 국숫집이 아직 있다.

힘들었던 시절이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고 고마운 일상이다.

유행이나 편리함에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고집이 이곳에 있다.

 

 

 

 

날카로운 바위산 대신 부드러운 언덕이 에워싸고, 그 온화한 어우러짐으로

삶의 지혜를 전하는 이 고장의 기운은 해동제일의 명필 추사 김정희를 길러냈다.

이 고택을 지을 때 충청도에 53 군영이 모두 한 칸씩 부조해 쉰세 칸짜리 집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만큼 추사의 가문은 당대 그 위상이 높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자연은 그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기운을 전하는 것일까 ‘중로 지실’ 추사가 직접 써서 걸어놓은 이 현판은

대나무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집에 화롯불이 반짝거린다는 뜻으로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다실의 이름이다.

나무가 크면 클수록 그 그늘은 또 다른 생명의 터전이 된다.

 

 

 

 

바람도 하늘도 소리를 낮춘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큰 소리 내어 떠들어대지

않는 깊은 인내가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만든다. 들판은 아직 황량한데 비닐하우스 안은

온통 초록이다. 아침 이슬에 고추가 상하지 않도록 덮어놓은 두터운 이불을

걷어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부부는 종일 꽈리고추와 씨름을 해야 한다.

 

 

 

 

사람이 편안하면 만물이 편안하다.

크고 거창한 꿈도 쓰고 남을 만큼의 돈 욕심도 하물며 절절한 그리움조차

조용히 묻어둔다. 세상은 한 시간을 두 시간처럼 서두르며 살라지 만 예산에서는

시간이 고즈넉이 흐른다. 그 사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기도 하고 뒤를 보기도 한다.

이제 봄이 어디쯤 왔는지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즐거움이란 살 수도 없이 많은 순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추사의 글씨체를 보면서 나도 한번 저렇게 멋지게 써봤으면 하는 바람도 마음에

품고, 비가 와서 시계는 좋지는 않았지만 느낄 것은 느끼고, 충분히 누리며

다음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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