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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강원 정선, 산골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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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를 드립니다.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때 한적한 곳을 여행을 해보자.

하늘로 올라온 것 같다 구름도 산 정상도 손에 잡힐 듯 눈앞을 가로막고 선다.

산은 장관이어도 산 중턱의 삶은 때론 힘겹다.

무슨 기력이 남아 있을까 싶기도 한데 세간에 떠드는 소리조차 바람처럼

무심히 흘러 보내는 정선 산골에는 지금도 사람이 산다.

 

 

 

 

어느새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바람의 냄새가 달라졌다.

사람들은 흔히 동강이라 부르지만 마을 사람들은 부러 조양강이라 부른다.

세상이 뭐라 하든지 이곳 조양강 상류 정선에서 뿌리내리고

사는 이들에게 조양강일 뿐이다.

조양강의 상류로 올라가면 골지천과 송천이 만나는 지점이 나온다.

아우라지다. 작은 내는 그 이름을 잃고 큰 강은 새로운 이름을 얻는 곳,

두 물줄기가 만나 하나가 되는 아우라지 일대, 오지 중에 오지에 정선이 있다.

그러나 아우라지는 새 출발에 들뜬 설렘의 강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60년대 초반까지 강 상류 유역에서

나는 목재를 뗀 목으로 엮어 서울로 나르는 행렬이 이어지던 그때.

소위 떼돈을 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뗀 목 모음 반은 벌이가 좋았지만

정선에서 영월까지 뱀처럼 구불구불하고 거센 물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애태우던 처녀 총각의 마음을 담은 동상은

그때 사람들의 일상이다. 아침밥이 사자 밥이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강에 뗏목을 띄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달리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양강 자체가 이미 해발 오백 미터 위에서 흐르는 강이다.

기본적으로 지대가 높은 데다가 강과 산이 맞붙어 있어 길을 내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저 이 도도한 강물이 유일한 길이었다.

 

 

 

 

사람들 역시 정선읍이나 영월로 나가려면 아우라지에서 배를 타야 했다.

뗀 목들이 줄을 잇던 그때엔 돈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아우라지를 건너는 나룻배도 늘 만원사례였다.

젊은 시절 번성했던 한때를 경험한 이들에게 마지막 남은 이 줄 배 한 척은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유일한 단소다.

이 배를 타는 날은 늘 작은 설렘이 있곤 했다.

첩첩 산골에 묻혀 사는 서러움 시집살이에 대한 버거움 어리거나

늙은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아리랑 아리랑 구성진 가락에 실어 강으로 보낸다.

아리랑만큼 삶은 힘들었지만 아리랑처럼 슬픈 것은 아니었다.

강을 무사히 건너자 정선군 중에서도 오지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강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허름하게 낡은 집 한 채가 서 있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이곳이 아우라지에서 마지막까지 손님을 받았던 주막집이다.

돌이켜 보면 벌써 사십 년도 더 된 일이다.

 

 

 

 

주막집에 인심 좋은 안주인이었던 이는 어느새 머리 허연 할머니가 되었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떠났어도 버리고 떠날 수 없는 일상이 아직 여기에 남아 있다.

이 일대에 무려 열네 개의 나루터가 있을 당시엔 주막집 방마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뗏목을 이끌고 서둘러 가는 이들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부터 걸어서 돌아오던 이들은 호주머니가 두둑했고 주막집에서

걸판지게 항상 차려 먹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안주인의 호주머니 또한 넉넉하던 시절이다.

뗏목꾼들이 사라진 뒤로 할머니는 둠의 산골 처음으로 변했다.

지금도 그 손을 놀리면 먹고사는 일이 갑갑할 지경이지만 평생

이곳이 삶의 터전이기에 떠나질 못한다.

추억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달콤한 수다거리일 뿐이다.

손자 손녀들이 있는 할머니는 한 가득 물을 받고 녹말을 풀어놓는다.

언제든 아이들이 돌아오면 감자떡이며 부침개를 만들어주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다.

이만큼 자유로운 곳이 없고 익숙한 곳도 없다.

할머니는 이곳 작은 산골 왕국의 주인이다.

 

 

 

 

염포마을 앞 조양강에는 긴 다리가 세워져 걸어서 드나들 수 있다.

마을을 둘러싼 칼 봉, 작은 봉, 큰 봉 세계의 봉우리로 하루 세 번 해가

뜬다는 풍광 좋은 오지마을이다. 하지만 이 풍광도 오래 뿌리내리고

살던 사람들을 붙잡지 못했다. 염포 마을의 분교는 벌써 오 년 전에 문을 닫았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엔 세월의 먼지만 쌓여간다.

학교는 텅 비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마을은 살아있다.

염포의 아이들은 모두 모아야 단 세 명,

강이든 강가의 모래든 아이들의 손놀림에 따라 무엇이든 좋은 놀잇감이 되어준다.

염포의 아이들에겐 하루해가 짧다.

눈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이 거대한 정선의 산과 계곡을 진정 사랑하려면 먼저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

울면서 왔다 울면서 간다고 했던 가 정선으로 오는 길이 너무 험해 울고

이 땅의 인심이 너무 좋아 떠날 때는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말이다.

정선은 그런 곳이다.

산이 높아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찌는 정선 땅에선 서두르지 않으면 금세 어두워지고 만다.

덕분에 사람들은 부지런함을 배웠다.

 

 

 

 

가슴팍까지 무성하게 자란 콩 줄기 사이로 할머니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몸놀림이 느려진 대신 인내는 늘고 솜씨는 무르익었다.

속 모르는 이들은 조양 강이 있으니 물이 풍부하겠다.

하지만 강물을. 산골까지 끌어올 수 없어 여기선 논농사를 짓지 못한다.

더욱이 겨울이 긴 땅이다. 밭작물도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러나 까다로운 조건들은 도리어 자연에 수능 하는 법을 가르쳤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능한 만큼 얻기 위해서다.

도시에 나가 사는 자식들은 왜 고된 밭일을 그만두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이는 여기가 고향이고 어떤 이는 이곳으로 시집와 함께 늙고,

온 할머니들은 이렇게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다.

수십 년 반복해온 일상을 포기하는 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

정선 산골에 천년 고찰 정암사가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골짜기를 더듬어 올라가야 하는 외지고 외진 계곡 말미에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을 끊어 한없이 정결함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부처를 바라며 오늘까지 정암사를 존재하게 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싫다고 떠나는데 부처의 귀한 사인은

일찌감치 들어와 이 터에서 가르침을 전한다.

정선 산골에서 가르침 한 자락을 얻고 나자.

진득한 땀 냄새 가득한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정선의 오일장은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예전엔 평창 봉평 장에 비하면 한수 아래인 작은 장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이 일대 산물이 모두 집결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장이 됐다.

오래된 호미와 촛대들 인두가 발길을 잡는다.

마당 한구석을 차지하던 낡은 물건들이 이렇게 관심의 대상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고객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온 젊은이들이고 좌판을 벌인 이들은 정선 땅의 할머니들이다.

누구라 할 것 없이 한 번쯤 둘러보고 싶은 즐거운 자리.

환갑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는 익숙한 솜씨를 자랑한다.

떡메 한 번 칠 때마다 청춘의 옛 모습이 한 걸음씩 다가온다.

 

 

 

 

콩가루 듬뿍 묻힌 그때의 인절미는 어쩜 그리도 맛있었던지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장터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다들 자리를 잡고 앉아 이것저것 정선의 맛을 찾는다.

배고팠던 시절 궁여지책으로 해 먹던 것들이 요즘은 인기 만점이다.

세상은 달라졌는데 맛은 예전에 그 맛을 더 좋아한다.

장터의 북적임에 정선의 삶은 다시 기지개를 켠다.

계속 비비며 살아봐야 남는 건 가난뿐이라고

사람들은 떠났지만 여전히 이 산골에는 열매가 달리고.

풍성한 수확이 영글어 간다. 키를 훌쩍 넘겨 커버린 고추 밭에서

할머니는 혼자 고추를 따느라 종일 허리 한 번 펴지 못한다.

올해 고추 농사는 어찌나 잘 됐던지 토실한 고추들이 주렁주렁한데 도와줄 일손이 없다.

사방을 둘러봐도 오가는 사람조차 눈에 띄질 않는다. 하지만 수확은 때가 있는 법.

사 오일 안에 따지 않으면 모두 걸음이 되고 말 것이다.

젊은 시절엔 일을 해도 해도 이런 풍성한 수확이 없더니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해진 지금 넘치도록 열매가 맺힌다.

절반도 넘게 장에 가져다 팔 것들이다.

 

 

 

 

정선 땅에서 나서 자라고 이 산골로 시집와 이제껏 살아 도시로

가겠다는 자식들을 말릴 수 없었지만 당신은 한 번도 이 집을 떠나 본 적이 없다.

흔하고 넉넉하면 천한 취급을 받고. 희귀한 것들은 좋은 것이라고 달려온다.

늘 가까이 있는 이보다 가끔 만나는 일을 때로 더 그리워한다.

그러나 정선에 남아 있는 삶은 사방을 둘러싼 산에 의지하고 곁에 있는

단 한 명의 친구에게 마음을 주며 세상 사이에 시름을 잊는다.

여름 햇살은 짧아도 정선의 정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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