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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가을 지리산의 서쪽 골 전북 남원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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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를 드려요.

이제는 제법 가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코스모스가 손을 들어 반기고 있어서

이럴 때는 어디든지 떠나고픈 마음이 들죠.

들뜬 마음으로 전통과 사랑, 맛이 듬뿍 묻어나는 전북 남원으로 떠난다.

참으로 오랜만에 지리산을 찾았다.

어머니의 산이라 불리는 지리산은 여전히 어미의 젖무덤처럼 푸근했다.

산은 짐작하기도 어려울 만큼의 세월을 이긴다.

그 시간 동안 쌓였을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곳 남원의 지리산엔 첩첩산중 옛이야기가 쌓여 있다.

시간은 깊은 가을로 향하고 있다.

 

 

 

 

천하는 이미 가을이 대세다.

가을만의 것들이 세상의 주인이다. 호두의 떫은맛은 고소함으로 바뀌고 있고,

성질 급한 밤송이는 진작부터 가을 타령을 한다.

시릴 듯한 청명함으로 물들어가는 지금, 가을이 속삭인다.

제게 깊이 빠져보라고 백두산에서 대간이 시작된다면, 그 마지막 모임은 지리산이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그리고 경상남도에까지 걸쳐 뻗은

지리산은 천오백 미터를 넘는 봉우리만 해도 무려 열다섯 개다.

끝도 없이 이어져 내리는 능선 아래로 남원이 있다.

스스로 제 길을 찾아가는 이 계절의 풍경에 잠시 잔걱정 큰 걱정이 사라지고,

풍경만 가슴속에 들어앉는다.

 

 

 

 

여름에 땀방울을 씻어주고, 겨울에 필요한 온기를 준비하는

가을은 일생을 배워도 모자랄 지혜 같은 것이다.

어딜 가나 붉은빛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오미자 수확이 제철인 때.

손끝까지 붉게 물들게 하는 오미자는 다섯 가지 맛이 있다 하여 오미자다.

시고. 짜고 달고 떫으며 쓰기까지 하다는 그 맛은

마치 봄, 여름, 가을과 겨울처럼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괴로운 우리의 삶처럼 그렇게 어우러져 있다.

나무도 사람처럼 철이 들기 전까진 생명을 만들지 못한다.

오미자나무는 꼬박 3년을 큰 후에야 첫 수확을 냈다.

 

 

 

 

 

한 달이나 빠른 까닭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의 영향은 산자락 마을 아래까지 뻗친다.

그래서 남보다 먼저 시작하고 먼저 끝을 맺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결국 부지런한 것은 땅이다. 사람은 땅의 일정에 맞춰 사는 것뿐,

남원엔 가을이 들어찬 지 꽤 되었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한 만삭의 벼가 추수를 기다리며 힘겹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짐을 오늘 사람이 감사히 던다.

그래서 오늘은 농부의 생일이다.

오늘만큼은 야속했던 여름의 태풍도 속 끓이게 했던 봄의 해충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고맙고 기특하고 예쁘기만 하다.

그의 부모를 닮은 농부의 마음이다.

농부의 부모는 지리산이다. 지리산이 시키는 대로 평생을 남보다 한 달 빠르게 사는 것이다.

당연히 수확의 기쁨도 먼저다.

 

 

 

 

가을 거지가 한창이다 보면 사람들은 때도 잊는다. 새참 시간도 놓쳤겠다.

출출해질 때로 출출해진 점심을 남녀가 함께 준비한다.

잡고 있는 것은 미꾸라지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게 제법이다.

미꾸라지는 온도가 낮아지면 따뜻한 진흙 속으로 파고든다.

아직은 미꾸라지 모리로 잡을 수 있지만 좀 더 추워지면 삽으로 진흙을 떠서 잡기도 한다.

가을과 남원에 잘 어울리는 음식이 이 추어탕이다.

남원의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삶아 살만 발라 갈아 넣어 걸쭉하고 진하다.

갖은양념을 한 어린 시래기에 들깨가루를 넣어 끓이면,

가을에 걸맞은 이만한 성찬도 없다.

사실 가을에 먹는 음식 전부가 성찬이다.

땅 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은 먹을거리는 지난 세 계절을 무사히 지낸 수고의 값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추석엔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음식 장만을 했다.

 

 

 

 

햇것들은 모두 오일장으로 모인다.

그래서 가을 시장은 여느 때보다 더 풍성하다 가을의 이야기가 한데 모이는 곳,

시장에서도 어김없이 계절의 향기가 진하다. 대충 둘러보자면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곳곳에 옛이야기들이 지금도 소곤 되고 있다.

아직도 추억은 현재의 것으로 살아있다.

자전거로 막걸리 배달을 다니는 모습도 그중 하나.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일화도 많을 것이다.

남원엔 지금도 옛 방식을 고집하는 양조장이 있다

백 년이 가까이 된 이곳엔 그 흔적들이 간간히 눈에 띈다.

그리운 것은 사라져 가고 사라진 것은 그립다.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어 그 세월이 흐뭇하기도 하다.

막걸리는 인생이 배어 나오는 술이다.

참 살기 팍팍하던 시절, 막걸리라는 것이 그랬다.

한 사발 들이키면 속도 든든한 데다 없는 돈에 먹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쌀이나 보리를 찌어 만드는 술밥은 요긴한 끼니가 되었다.

막걸리를 빼내고 남은 술밥 몇 숟가락이면, 취하기는 해도 배고픔은 잊을 수 있었다.

한때 양조장은 화려했다 추석 때면 열섬도 너끈히 나갔다고 하니,

놀부가 부럽지 않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양조장엔 곧잘 들려야 했다. 주전자 하나 들고,

아버지 심부름으로 양조장의 외상으로 술을 사러 가곤 했던 어린 시절,

호기심 반 허기 반 한 두 방울 마시다 보면,

집에 도착할 때쯤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다 알면서도 배고픈 아이를 나무라지 못했다.

그때는 그랬다.

 

 

 

남원 하면 옛사랑의 이야기가 아무래도 가장 유명할 것이다.

열여섯 춘향이의 지순한 사랑 아리도 이상향을 찾는 꿈은 아니었을까.

지금도 사랑가는 이곳에서 여전히 들려온다.

남원에선 소리 잘한다는 자랑을 하지 말라 했다.

그 이유를 소리꾼은 지리산이라고 꼽는다.

지리산의 영향 아래 놓이지 않은 삶이 없다.

지리산의 기후도 그 산새도 사람도 나무도 모두 그랬다.

그래서 영험한 산이 지리산이다. 산은 하늘 아래 만물을 길러냈다.

만발한 꽃에 꿀을 찾는 벌들이 모였고, 득음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계곡으로 모였다.

배고픈 시절에도 맑은 물엔 물고기가 넘쳤고, 그 물은 온갖 나무와 꽃을 길러냈다.

 

 

 

 

나무는 집을 짓는 데 쓰고 그릇을 만드는 데도 썼다.

그래서 나무는 목수가 많았고 당연히 목기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목기를 다듬으려면 연장이 필요하고 연장은 대장간이 있어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남원엔 대장장이도 많았다.

어쩌면 이 세상엔 우연이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촘촘한 씨줄과 날줄이 만나 만들어지는 것이 오늘일지도 모른다.

옛사람들은 그래서 내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담하게 웃었는지도 모른다.

남원엔 아직도 목기장이 꽤 있다.

목기는 지리산의 박달나무나 은행나무로 만든다.

옛사람들은 나무를 벨 때 죄송하다고 고맙다고 도끼 들어가니 놀라지 말라고 선창을 했다.

그렇게 베어졌다 해도 나무엔 생명이 남아 있다.

그래서 몇 달을 재워 진정을 시켜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나무는 제 몸을 잘라 쓰라는 허락을 한다.

목기 장인에겐 연장과의 인연이 중요하다.

연장은 이 길을 함께 가는 수족 같은 존재다.

속 칼, 등 칼, 내 칼, 홍 칼, 좋은 연장을 만나지 못하면 훌륭한 장인이 될 수 없다.

칼을 귀하게 대하지 않으면 장인이 아닌 것이다.

손에 익지 않으면 칼이 사방으로 튀기 때문에 친해질 때까지도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목기라서 조선조 오백 년 동안 진상품으로 올릴 수 있었다.

대를 물려줄 만큼의 탄탄한 목기가 지난 과정의 보상으로 태어난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에 하나는 제기고

다른 하나는 대여섯 개가 한 벌이 되는 스님들이 쓰는 바르다

지리산에 있는 사찰 덕에 남원의 목기는 발전했다.

 

 

 

 

신라 시대에 지어져 산과 함께 세월을 보낸 실상사.

들판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것이 찾는 이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마음일까.

아슬아슬한 희망이라도 놓지 않게 해 주려는 것일까.

통일신라시대부터 이곳을 지켜온 철제 여래 좌상은

그 간절한 마음으로 철 사천 근을 녹여 만들었다 한다.

여래 좌상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제 괜찮다고

이 계절엔 조금 쉬어도 된다고 다독이는 것만 같다.

지난 세 계절 동안 충분히 고생했다고 위로마저 하는 것 같다.

 

 

 

 

가을은 선물이었다. 그만 쉬고 싶어질 때쯤,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고,

다시 혹독한 겨울을 이길 마음을 다지게 했다.

하늘이 가장 높아지는 계절은 하늘 아랫사람이 가장 작아지는 계절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때 더욱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가을 안에서 사람이 또 한 번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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