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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땅끝과 바다의 경계, 전남 해남에서 욕망을 던지고 태워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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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The Best Life) 인사를 드립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여행을 가든지, 등산을 하다 보면, 무거운 것을

다 집어던지고 홀몸으로 가고 싶을 정도로 숨이 차오를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배낭을 던졌습니까? 아니면 온몸을 던졌습니까?

오늘 땅끝마을을 향하며 모든 것을 바다와 이글거리는 태양에 모든 것을 던지고

싶은 심정으로 바닷가에 서 있습니다.

 

 

 

 

낯선 행인 하나가 되어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길을 나선다.

어디서 보았던 풍경일까? 눈부신 아침, 파릇한 의식들이 모난 부분을

기꺼이 파도에 내맡기고 있다. 실로 먼 길이었다. 땅끝 해남.

아! 이곳에선 사랑했던 기억만 살아있는 가?

거짓 없이 단정한 몸짓으로 나는 그리움 인양 떠나가는 그대를 부릅니다.

벌거숭이 몸에 찬 서리가 내렸다. 상화 하얗게 핀 서리꽃이 허망하게 지나가버린 청춘 같다.

겨울 해가 맑은 얼굴로 위로한다. 지난밤 쇠잔해진 기력을

추슬러 다시 성숙하게 다가오는 얼굴, 바람이 미는 대로 태양은 붉은 깃털을

나풀대며 겨울을 흔든다. 투명한 햇살 아래 오래오래 황홀하다.

 

 

 

 

부대끼며 견딘 세월이 아니라면 흔들림마저 버거운 몸짓처럼 느껴지리라.

마른 숲에선 갈 때가 스스로 우는 소리가 들린다.

지나간 모든 것들과 기꺼이 작별하라고 겨울 갈 때 숲이 야인 손을 흔든다

날마다 내 아침 해도 솟는다. 언젠가 꼭 다시 오리라. 그로부터 십 년,

그때 맺힌 마음이 무엇이었던가? 기어이 당신은 떠나고

이끌리듯 나만 홀로 추억이 머무는 산사에 다시 섰다.

찻잔을 채우는 맑은 차를 보니 허전해진 가슴에 너울이 인다.

 

 

 

 

하늘의 끝자락에 다시 찾은 산사 내 안에 있는 질문들이 일제히 고개를 든다.

이제 정말 끝인가? 영영 이별인가 하면 고은님 되어 다시 오시는

자연의 섭리 앞에 끝과 시작은 큰 의미가 없다.

사람만이 금을 그어 어리석은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리고는 그 안에 무엇을 채우지 못해 조바심 내고 늘 허전해한다.

겨울은 깊은데 나는 무엇을 하는가? 산사에서 화두 하나를 안고 터벅터벅 내려왔다.

가까이 가지 않는 한, 그리고 멋모르고 덤벼들지 않는 한,

그 삶은 아무 탈 없는 대신 지루하다. 뒷걸음치지 않으니 무엇인가에

열중한 사람들이 보인다. 흰둥이의 평화로운 오후 그 한 옆을 헛기침을 하며 기웃거린다.

 

 

 

 

적당한 때를 지키는 것, 그러면서도 얽매이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화사한 동백꽃이 길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마음을 다독인다.

이 길 또한 그대가 지나갔을까? 여름날 은행잎이 떨어지는 것이 마치 초록비가

내리는 것 같다 하여 노구당이다. 효종 임금이 스승이었던 고산 윤선도에게

하사한 노구당에서 나도 그대와의 담담한 해후를 상상해본다.

 

 

 

 

영영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겨울 호수 위 잠든 배 한 척,

침묵하는 이유를 애써 캐묻고 싶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시간이 흐른다.

어린 눈으로 서툴게 찍었던 흑백 사진처럼 아침 포구엔 설렘이 있다.

항상 그리운 것은 사람의 향기다. 낯선 시선이 두 사람의 동선을 조심스럽게 따라다닌다.

햇살이 채 고이기도 전에 망망한 바다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벌써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던 겨울바람에 날숨이 고르다.

바닷물에 씻겨 내린 흔적이라도 찾는 것일까? 수백 번 가슴을 쓸어내렸어도

이보다 서럽지는 않았다. 찬 갯벌에서 갈 길을 더듬는 여인의 운명은 어떤 운명일까?

 

 

 

 

처음으로 하루가 너무 길다는 생각을 한다.

겨울과 겨울 사이로 잦아드는 갯 바람이 한 여인의 운명을 앞질러 가고 있다.

마음 밭에도 이렇게 불을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안에 욕망을 태워 한 줌 재로 남는다면 나 기꺼이 그리하리라.

미련도 집착도 모두 불꽃에 묻는다.

땅 끝에서 타들어가는 욕망의 허물을 응시하다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어쩌면 불꽃의 노래가 너무 후련했는지도 모른다.

무시로 일렁이는 내 안의 욕망이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끝난 그리움처럼 훨훨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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