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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따뜻한 둥지와 같은 전남 해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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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The Best Life) 인사를 드립니다.

벌써 1월도 접어들고, 우리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것이 정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가 않다.

설렘도 있어야 하고 기쁨도 있어야 할 텐데, 덤덤한 모습이다.

그래도 고향으로 가는 것은 말릴 수가 없는 것 같다.

정부에서는 가능하면 명절 때에 움직이지 말라고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떠나는 것을 보면, 태어난 둥지를 잊지 못하는 것 같다.

그 따뜻한 둥지의 한편인 전남 해남에서 온기를 느끼며 입김을 바깥으로 내뱉는다.

 

 

 

   

들고 나는 배들로 시끌벅적해야 할 시간인데 바다 위 모든 것들은 멈춰 있고,

우뚝 솟은 등대는 바람 소리 속에 더 애처롭다. 잠시 본업을 접었어도 늘 있던 자리에

머문 사람들, 기계 돌리는 굉음도 사라진 지 오래 출항이 뜸해지면서 배를 고치는 대신

공업사는 이를 놓은 선주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인생에 불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옅은 희망을 낳는 곳이다. 살다 보면 외로움이 깊어지는 시간이 있다.

잊고 싶은 시간이 있다. 새로운 시작이 가슴 설렘보다는 절망을 묻어야 하는

힘겨움으로 올 때가 있다. 해남의 바닷 농사가 예전 같지 않아서 드물게 오가는

배들 사이로 등대는 하늘과 더 가까워 보인다. 넓은 바다를 향해 나서는 어부들을

배웅하고 늘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좌표를 잃어 부유하는 일이 없도록 빛을 보내주었을

것이다. 오늘 이 등대는 이곳을 찾는 나그네들에게 삶의 좌표를 묻는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 길을 나서면 만나는 수많은 지명 가운데

나그네의 본능을 자극하는 곳, 이 땅의 가장 마지막 지점이라는 땅끝 마을이다.

 

 

 

 

한 해의 첫째 달이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일몰과 일출을 본다는 것,

사람들은 끝이 끝이 아님을 오히려 새로운 시작임을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아직 겨울 기운이 가시지 않았는데도 눈이 닿는 곳이면 푸른빛이 가득하다.

사시사철 농사를 짓는 해남엔 농번기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낮은 구릉지대인

길가는 온통 너른 감자밭이다. 트랙터가 감자를 토해 놓는 모습은 감자 하면 강원도라는

고정관념을 한 번에 바꿔 놓는다. 붉은 기운이 가득한 빵 위로 튼실하게 알 굵은

감자들이 솟아 올라오면 마음속 근심들도 잠시 잊는다.

세상 사는 게 녹록지 않은 것처럼 잘 여문다는 게 어찌 쉽기만 한 일일까?

 

 

 

 

황토밭 붉은 기운을 띠는 해남 땅 구름 사이로 홀로 걸어가는 농부를 본다.

혼자 가는 길임에도 걸음에 힘이 되어 있는 것은 붉은 땅이 주는 기운 탓은 아닐까?

호젓한 마을길을 따라 한가로운 풍경들을 지나칠 무렵 마을 앞에서 등을 돌려보면,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과 마주 선다. 멀리서 봐도 온통 기암절벽으로

가득한 산이지만 올라서는 길목은 호젓하고 편안하다. 그냥 스쳐가기 어려운 다정한 길이다.

따뜻한 기운은 산속에 먼저 와 있었다. 빛과 색은 완연한 초봄의 것이었다.

달마산 정상에 서면 차가운 바람과 멀리 완도 보일도까지 사방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탁 트인 시야가 가슴까지 시원하게 한다. 그리고 암벽 사이로 눈에 들어오는

암자 하나 바위가 호위하듯 둘러싼 햇빛 잘 드는 자리, 암자는 요새처럼 앉아 있다.

이곳 도솔암에서 세상과의 인연이나 미련을 깨끗하게 잘라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해가 질 무렵 바다는 표현하기 어려운 푸른빛을 띤다. 심란한 마음을 딛고 하루를

마칠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이 비치어 온다. 한 줄기 작은 빛은 어둠 속에서 가장

환하게 빛난다. 낯선 땅에서 나그네들에게 위안이 돼 주는 곳, 하루를 마감하는

시장 상인들의 모습에서 고단함과 아쉬움을 느끼는 건 나그네의 동병상련일까?

하루 종일 열심히 발품 팔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늦은 시간 요깃거리야말로

진수성찬이 따로 없고 각별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도심의 회색 콘크리트 빌딩에서는 일부러 짬을 내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주정 부리들,

밤이 깊어도 오히려 손님이 그치질 않는다. 청명한 햇살 대신 안개 낀 아침이 더 많은 곳,

희뿌연 안개 탓에 산과 숲을 둘러봐도 명확한 모양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새순이 돋고 있다.

 

 

 

 

부드러운 일월의 햇살과 바람은 풍경까지 은은하게 만든다.

담장 뒤 비자나무 숲의 울림이 푸른 빗소리 같아 이름 지었다는 녹우당,

건물 이름과는 다르게 비극적인 정서를 가진 곳이다.

당쟁에 연루되어 벼슬을 포기해야 했던 고산 윤선도, 그가 해남 땅으로 내려오면서

효종이 하사한 수원 집의 일부를 떼어와 이곳을 지었다. 바람 소리 은은한 녹우당 뜰이나

숲 근처 별채를 거닐며 은거하는 자의 기쁨과 울적함을 노래했던 그의 시구가 묻어 있는 곳,

"세상이 버리거든 나도 세상을 버린 뒤에 강호에 임자 되어 누웠으니 부귀공명이 꾸민 듯

하여라." 몇백 년은 됨 직한 고목이 맞아주는 마을, 야트막한 돌담들로 둘러싸인 아늑한

골목길은 인적이 드물어 쓸쓸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읍내에 나갔던 할머니가 마을 어귀에 들어선다 양손 가득 든

할머니는 점심밥 안 먹고도 배부른 표정이다. 나지막한 발자국 소리를 먼저 듣고 대문가에

나와선 강아지가 할머니를 반갑게 만든다. 할머니는 장에서 사 온 물건부터 단단히

챙겨둔다. 아이들한테 뭘 준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쁘다. 이제 며칠 후면 아이들이

둥지로 모여들 것이다. 갈대와 물억새 사이 추위를 피해 찾아든 철새 무리는 언제나

나그네의 시선을 붙잡는다.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긴 채 흘러가는 철새들은 가장 아늑해

보인다. 풀밭에서 숨을 고르는 철새들은 그렇게 계속 머물러도 좋을 듯하다.

머물렀던 곳에서 늘 그랬던 모습으로 그러나 분명 떠나야 하는 순간이 있다.

가장 힘찬 날갯짓으로 창공을 향해 날아오를 때, 낯익은 벌판을 가로질러 새로운

내일을 향해 모든 망가진 것과 아픈 것들 어두움을 묻고 천천히 날아올 그 순간에

희망도 꿈도 함께 솟아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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