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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하늘과 바다가 겹치는 곳, 소매물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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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The Best Life) 인사를 드립니다.

만약에 사방이 가로막혀 나갈 수 없는 곳에 있다면, 여러분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아득한 수평선과 바다가 막아 적막하기까지 한 섬, 소매물도에서

외로움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좌절시키고, 업시키는지를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파도와 바람소리는 앞장서며 달려가고 나는 그것을 따르지 못하고

그곳인 소매물도에 주저앉고 말았다.

 

 

 

 

남쪽의 바다는 그 푸르름에 잠시 겨울임을 잊게 한다.

때로 진한 청색이기도 하고 검은빛을 보이기도 하는 바다가 한겨울임에도 쪽빛이다.

이 청량한 바다 내음 속에서 생명들 또한 영글어 간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마주 선 적이 있는 듯 익숙한 풍경들 시간마저 멈춘 듯 적막한 포구,

이곳엔 바다가 있고 섬이 있고 삶이 있다.

눈물 나게 아름다운 자연이면 그에 기대어 사는 이의 삶 또한 아름답다.

 

 

 

 

통영에서 배를 탔다. 말끔한 여객선을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리면 소매물도에 닿는다.

여름 피서철에는 관광객들로 만원을 이룬다 하는데 이 겨울 여객선은 한산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가로질러 남으로 26km, 기기묘묘한 형상의 섬들 사이에

소매물도가 있다. 섬은 하나의 바위와 같고 포구는 조용했다.

혹여 이 배를 따라 그리운 이가 찾아올까 선착장으로 뛰어나오는 이도 있고,

담장 너머로 살펴보는 이도 있다. 산을 타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은 여러 채 보이지만

실상 소매물도에는 현재 열다섯 명 밖에 살지 않는다. 사오십 년 전만 해도 삼십여 가구에

백여 명이 넘게 살던 섬이었는데 하나 둘 떠나더니 이젠 섬사람 모두 모여도 참 단출하다.

삼일만 지내면 소매물도의 일상을 모두 볼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의 하루는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소매물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발전소가 하나 있어 아침과 저녁에 잠시 전기를

보내주기 때문에 냉장고도 세탁기도 여기선 별로 쓸모가 없다.

소매물도 꼭대기 망태봉 정상에 서면 숨이 막힐 듯 청명한 한려수도의 바다가 펼쳐진다.

옆으로 대매물도와 등대섬이 그림처럼 버티고 서있다. 많은 이들이 무릉도원이라 칭송에

맞지 않는 풍광이다. 섬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길은 없으나 중국 진시왕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보낸 동남동녀가 이곳까지 왔다 하니, 전설 속에서는 이천 년도

넘었나 보다. 맑은 날이면 일본 대마도까지 보인다는 망태봉 정상에 서면 탄성이

터져 나온다. 소매물도는 한때 바다를 지키는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은 적도 있었다.

삼십여 년 전 이 일대 바다에 침범해오는 외국 불법 선박들을 감시하기 위해 정부에서

특별히 세운 초소다.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소매물도 최고의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곳은 요즘은 감시 초소가 아니라 하나의 관광 코스일 뿐이다.

섬이 있고 섬에 사람이 사는 것으로 바다를 지킨다.

 

 

 

 

선착장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하루에 두 번씩 배가 들어오면 섬을 찾는 사람 섬에서

나가는 사람들로 분주해진다. 섬에서 필요한 모든 물품들을 모두 육지에서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짐도 많다. 섬에서는 자전거도 손수레도 쓸모가 없다.

오직 걸어서 다닐 수 있다. 골목은 좁고 오르막 내리막이 많고 돌 자갈길이다.

더욱이 계획을 세워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길을 잘못 들면 한참 돌아야 한다.

집은 각각 따로 살아도 생활은 가족처럼 하나다. 이 섬 안에서 사람들은 가릴 것도 없고

따질 것도 없는 삶을 산다. 집에서 수제비 한 그릇을 먹고 난 뒤 해녀들은 바닷가에

나와 있었다. 물에 들어갈 시간이다.

이 한겨울에 일거리가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할까 아니면 지독히도 고생스러운 직업이라고

한탄을 해야 할까? 하지만 막상 해녀들은 이런저런 조건들을 그리 따지지 않는다.

다만 찬 바닷물이 스며들까 서로의 잠수복을 입혀줄 뿐이다. 운명처럼 받아들인 일상이다.

왜 이렇게 힘들게 일하느냐 묻는다면 해녀들은 서슴없이 대답한다.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때로 자식들을 위해서, 때로 세간을 늘리기 위해서 꿈은 형편과 처지에 따라 달라도

생활은 똑같이 반복된다.

 

 

 

 

백오십여 년 전 소매물도에 사람이 처음 들어와 살 무렵 이 일대엔 소문이 돌았다.

소매물도에 가면 해산물이 많아 굶어 죽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 말은 얼마 전까지도 사실이었다. 금방 날아오를 듯한 용바위, 깎아지는 듯한 병풍바위,

하늘을 찌를 듯한 촛대바위, 그 바위섬 사이 푸른 바다는 보물 창고처럼 퍼내도 퍼내도

줄지 않고 먹을거리를 주었다. 소매물도에서 삼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 등대섬이 있다.

이 섬에서 저 섬으로 건너가려면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처럼 열리는 물길을

기다려볼 일이다. 때때로 건너가 보라고 자연이 준 선물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 그러나 이 일대에서 가장 바다를 많이 볼 수 있는 섬,

마치 형제처럼 가깝게 붙어 있는 섬이지만 소매물도 선착장에서 등대섬으로 가려면 족히

한 시간 삼십 분은 걸린다. 산 하나를 걸어서 넘는 수고를 거쳐야 만나는 섬이다.

등대는 밤이 되면 바다에 배들을 지키고, 등대지기는 밤낮으로 등대를 지키고 있다.

조촐한 살림에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다.

육지에선 전화 한 통 인터넷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여기선 통하지 않는다.

 

 

 

 

등대지기의 살림살이는 소매물도 사람들과 똑같다.

물도 전기도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태양열을 이용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밤새도록 등대에 불을 밝히기 위해서 낮 동안 강력한 태양 에너지를 듬뿍 받아 놓아야 한다.

선착장에 짐이 도착하자. 힘껏 둘러매고는 등대가 있는 섬 정상까지 걸어 오른다.

사람의 손과 발이 아니면 어떤 것도 도와줄 수 없는 생활이다.

평온함 속에는 평온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이가 있다. 바다의 표정을 다 알 수

없듯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들리는 것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추적추적 스산한 겨울비가 내렸다. 온 섬이 빗 속에 갇혀버렸다. 바다에도 나갈 수 없고,

나무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텔레비전도 마음 놓고 볼 수 없는 날 함석지붕 빗물

떨어지는 소리에 몸도 마음도 욱신거리는 날이다.

하루 종일 비는 그칠 줄 몰랐고, 그렇게 소매물도의 하루가 흘러갔지만 마당에 내놓은

큰 통에는 빗물이 모아졌다. 일을 할 수 있는 날은 그것대로 좋고, 비가 와도 귀한 물이

모아지는 수확이 있다.

 

 

 

 

하루도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한 살이라도 더 젊어 보이려고 애를 쓰면서

나이 듦을 한탄한다.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어 한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는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는지 쉽게 잊어버렸다. 소매물도에서는 늙어감을 한탄하지 않는다.

세월은 흐르지만 섬사람들은 그곳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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