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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녹음(綠陰)으로 물들이는 전남 보성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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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입니다.

내 마음속에는 항상 푸른 창공과 푸른 산과 강을 안고 살고 싶다.

완전체에서 하나씩 하나씩 벗겨지고, 손실이 되면서 상처를 입고 좌절을 하죠.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전남 보성의 여행은 손실되는 인생의 삶을 다시 복원하는 것으로

다짐을 하고 떠난다. 녹음으로 물들이는 전남 보성에서 내 인생을 찾고자 한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초록이 인사를 하는 곳, 세상을 담은 물결에도 같은 색 물이 들고,

마을 어귀에 발을 들여놓을수록 싱그러운 녹음이 더해 가는 곳,

여름이 한창인 이맘 때 쯤이면 보성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어난다.

새싹으로 수를 놓았던 계절은 천천히 사라져 가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 초록을 찾아온다.

삼나무 숲 오솔길을 지나 초록물이 산 꼭대기까지 넘실대는 오월의 녹차 밭에는 차양이 가득하다.

차 밭에서 시작한 보성의 초록은 들판으로 퍼져간다.

맨손으로 흙을 골라내는 아낙내들의 땀방울은 대지를 적시고 알 굵고 튼실한 감자들을 키워낸다.

꽃보다 더 화려했던 청춘. 그러나 너무 짧아서 덧없이 느껴지는 청춘.

마을 어귀 멀리서 봐도 다정해 보이는 할머니들 새 말은 다리가 저려와도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랜만에 만나 할 말도 많은 것일까. 주고받는 인사가 길어도 돌아가는 뒷모습엔 아쉬움이 가득하다.

도시로 나가는 버스가 서는 곳 노인들만이 줄지어 앉은 이곳에서 한 할아버지가 유난히 눈에 띈다.

 

 

 

 

보성의 초록빛은 해안의 쪽빛으로 이어진다.

기름진 갯벌은 요긴한 먹을 것을 키워낸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갯가재.

먹을 것을 주어 담는 남자의 마음은 이미 풍족하다.

거기에 온 가족이 둘러앉은 모습까지 별 일이 없는 한 바닷가로 나오는 건 하루를 마치고,

다시 맞아 주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 눈을 뜨던 그날부터 지켜보고 바라봐 주는 사람.

힘들고 지칠 때 바람막이가 되고, 힘을 주는 사람.

너무나 많이 마음 아프게 해도 내색하지 않고 다시 손을 내주는

그렇게 평생 함께 해주는 그 사람의 이름, 아버지 어머니.

 

 

 

 

깨끗한 하늘 아래 깨끗한 땅에서 맑은 차가 자란다.

초록의 능선마다 아낙들이 새 손들을 뜯어내고 있다.

이곳에 백팔십여만 평 되는 차 밭에서 전국 차 생산량에 반이 나온다.

평생 찻잎을 따온 이력은 능숙한 몸짓이 대신 말해준다.

어린 찻잎들을 보면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가까이 있지 않아도 늘 눈에 밟히는 이쁜 손주들,

여린 새순은 손주들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늘 떠오르는 정다운 풍경 속에 등장하는 것, 장독대와 강아지다.

지금은 냉장고에 밀려나 아파트 베란다의 좁은 구석이나 차지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추억의 저편으로 쓰러져 가고 있는 옹기를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구대째 삼백여 년을 이어 내려온 가업이어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만들어 낸다.

직접 물레를 발로 돌려 그릇을 빚고 약토와 재를 섞은 전통의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 방식이다.

일제 시대엔 광명단이라는 유약을 바르게 되면서 우리 그릇에 숨구멍이 막혔었다.

그러나 이제는 질식했던 옹기에 새 숨을 불어넣어 되살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배웠다. 아들이 교사가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

아들만큼은 절대로 험하게 살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핏줄은 속일 수 없는 법 아버지의 모진 반대를 무릅쓰고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생각들이 있다.

완전히 비워내야 제대로 담을 수 있다는 그래야 진정한 옹기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옹기는 같은 모양끼리 모여 있는데 그 자신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

때때로 자신이 만든 온기가 부러울 때가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부럽다.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고

함께 나눌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자연은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을 내어 준다.

 

 

 

 

사람들은 자연에 기대어 살고 자연이 주는 영감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묘사된 보성에는 눈 요깃거리뿐만 아니라 입맛을 돋으는 명물이 많다.

맛은 그만이고 몸에도 좋다고 소문난 이 집의 전통주도 보성 명물 가운데 하나다.

특별한 비결이 있다면 술 잘 빚던 어머니의 딸이라는 것,

그리고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잘 따랐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할머니, 어머니가 함께 술을 빚을 때마다 꼼꼼히 지켜보았던 기억은 이제 자신의 직업이 되었다.

고향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먹을거리에 몸에 좋은 재료들을 추가하긴 했지만

맛과 향의 원천은 어머니에 있다. 모두가 부족하고 가난하던 시절.

슬프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주던 어머니의 손맛.

그 기억을 자신이 이어가고 있다.

완전히 비우면, 충만하게 채울 수 있는 법.

한 번에 그득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채워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물이 푸른 것은 산이 푸르기 때문이다.

완연한 눅음으로 향해 가면서 보성의 산자락에는 녹음이 물결을 이룬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보성에서는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다.

시원치 않은 버리에 담배를 무는 것도 긴 밤 일터에서 지새우는 것도 마음속에 자식들 때문.

아직 채 눈 뜨지 않은 보성의 여명.

해 뜨면 늘 같은 자리에 서는 사람들, 보성이 품은 것은 공기 좋고 산 높고 물 맑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이 부여한 녹음 위에 더 푸르른 빛을 더하는 건 자식을 둔 어버이의 마음.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초록을 만드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이다.

이번 보성을 여행을 하면서 자연은 우리를 끌어안을지언정 우릴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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