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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늘 푸른 섬 거문도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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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드려요.

날씨가 좋은 날, 여행을 떠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마인드적인 면에서

다르게 나타나죠. 특히 섬 여행은 본인 발로 땅을 밟고 가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배가 크다고 안전하다고 할 수가 없죠. 세월호도 컸지만 사고로 인하여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듯이 설레면서도 두려움이 약간은 있습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거문도!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육지에서 느끼지 못하는 생동감이 있고, 인내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거친 파도와 몰아치는 바람은 사람들을 강하게 하고, 섬은 굳건하게 만든다.

바다 한가운데 힘차게 늘 푸른 섬으로 서 있는 거문도로 달려간다.

 

 

 

 

멀리 안개처럼 펼쳐진 세계에서 사람들은 언제부터 그 먼바다에 살게 

됐을까. 거문도! 태평양을 가는 길목으로 대륙을 여는 요충지로

 열강들의 각축 속에 쓰라린 근대사를 열었던 섬, 그러나 거문도는

 지금도 싱싱한 생명력으로 한반도를 지켜보고 있는 늘 푸른 섬이다.

 

 

 

 

 여수에서 뱃길로 2시간, 다도해 아름다운 풍광 끝에 거문도가 있다.

 동도, 서도, 고도가 어깨를 맞댄 섬이다.

거문도로 들어서는 큰 대문은 희고 붉은 두 개의 무인등대, 등대들 너머에는 풍랑을 

잠재우는 섬 사이의 섬 고도가 있다.  거문도를 육지와 이어지는 섬이다.

 세 개의 섬에 나누어 사는 주민은 1,500여 명, 섬 주민은 줄고 있지만

그들을 찾아오는 짐 들은 늘고 있다. 배가 닿는 고도는 다시 삼호교를 통해 서도로 이어진다.

 섬의 이름만 다를 뿐 대중교통이 따로 없는 거문도는 서로가 이웃한 동네다. 

농부가 모내기를 준비하듯, 섬사람들은 풍어를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준비하는 늘 푸른 섬 거문도로 달려간다.

 

 

 

 

이제 곧 삼치 철이다. 섬이 둘러싼 동도 앞바다는 마치 호수처럼 파도가 

잦아든다. 이 계절에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바쁘다.

 잘 자란 자연산 미역을 갈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채취권을 가진 사람은 따로 있지만, 미역을 말리는 일은 너나없이

 섬사람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미역의 매달리는 사람들이라야 나이 든

 아낙뿐이다.채취권을 산 아들 덕분에 할머니는  한해 넉넉한 국거리를 마련해 두었다.

거친 파도와 바람이 불어도 그곳에 거문도가 있듯이, 늘 푸른 섬 거문도로 달려간다.

 

 

 

 

 물이 귀한 곳이 섬이다. 그러나 할머니 댁은 마르지 않은 귀한 

우물이 있어 늘 사람이 꾀는 집이었다. 수도가 들어오고 섬의 물사정은 좋아졌지만 

그래도 아낙들은 지금껏 소금기 짙은 물과 씨름하며 산다.

 시집살이가 시작되기 전부터 섬의 여인들에게 바다가 텃밭이었다.

 바다! 바다는 해삼이며, 전복이며, 그날그날 돈 되는 바다 산물들로 보답해준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의 최남단,  육지로부터 머나먼바다 끝이지만, 

거문도 사람들에게 다른 포부를 심어 주고 사는 인정을 나눠줬다.

 절경에 취하고 인물에 감동하고 역사의 눈 돌리게 하는 섬,

 거문도는 지금 또 무엇을 품고 있는 것일까. 늘 푸른 섬 거문도로 달려간다.

 

 

 

 

 한 때, 거문도의 또 다른 이름  포트 해밀턴, 처음 거문도를 찾아온 영국군은 

섬에 영국 해군성 차관의 이름을 붙였다고 하니, 다시금 1885년에 거문도를 무단 점령을 하고 말았다.

러시아의 남진을 막겠다는 명분이라고 한다. 이 섬에 누워있는 영국군의 묘지,

그들에게 푸른 섬의 기억은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영국 러시아 미국 그리고 일본에까지

거문도를 뒤 흔들었던 열강들의 힘겨루기는 천혜의 요지, 거문도의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아픈 상처를 여미고자 우리는 늘 푸른 섬 거문도로 달려간다. 

 

 

 

 

우리나라 근대사에 또 하나의 상징인 거문도 등대, 등대 가는  길목엔  마치 바다새의

긴 목처럼 목 넘어 고개가 펼쳐진다. 만조 때나 태풍 때면 물이 넘어 온다는 아름다운 바위 고개다.

 목넘어 고개를 넘으면 동백 숲이다. 과거엔 동백 가지를 모아 땔감으로 썼을 만큼

섬을 뒤덮었던 거문도 동백, 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에 가장 아름다운 동백터널로 꼽히는

 1.5 km 그 길이 절정을 넘긴 동백꽃이 지난날의 화려함을 접고 최후를 맞고 있다.

 남해안의 최초의 등대는 올해로 백 열두 살을 맞았다. 나라가 문을 열기도 전에

 일찍 등대가 세워졌다는 건 거문도가 지리적 요충지였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 시절에 등대 탑은 이제 유물이 돼 버렸고 유물 등대 옆으로는 34미터

 등대 탑이 세워져 있다. 백열두살 난 등대는 계속 쓰면서 새 옷을 갈아 입힌 것이다.

고전과 현대가 만나 있는 곳, 이곳 거문도에서 미래를 위해서 밝은 빛을 비춘다.

 

 

 

 

태평양의 거센 기운을 막아준다고 믿으며 배들이 쉬어가던 섬,

급변하는 날씨처럼 거친 바위지만 거문도에 어부와 해녀들은

풍성한 해산물을 기르는 이 바다를 사랑했다.

이를 보면서 우린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동행하고 있는가 하며

스스로를 돌아 본다. 거문도의 거친 환경은 그들의 삶을 닮아 있는 것이다. 

거문도의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거문도의 사람들도 많이 떠났다.

동도와 서도의 안 바다에는 가두리 양식장들이  들어섰다.

 바람과 조류를 등지고 있어 양식의 좋은 조건을 갖춘 까닭이다.

 

 

 

 

그러나 양식에 매달린 사람들은 모두 섬에서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

 잘만 하면 바다에 맞서지 않고, 큰돈을 쥘 수 있는 일이지만, 

그 탓에 먼바다에 대해서는 소원해지고 있다. 아픔 역사와 거친 환경 속에서도

거문도의 백 열두 살이 넘은 등대는 어부들의 내일을 밝힌다.

변하지 않는 등대의 역할을 보면서 우러러 보였고, 미련할 정도로 우직한 그의 모습에

현대인들은 우둔하다고 할지라도 조변석개의 마음으로 사는 인간들을 교훈 하는 것 같다.

 

 

 

 

 돌아보면 육지는 멀고 바닷길은 삼백리, 그 외진 삶의 조건 속에서도

 큰 문장가를  많이 낳아 거문도라 했던 그 섬.

 오늘도 고독하나 외롭지 않고, 거칠지만 모나지 않다.

 풍경도 비경이요. 사람도 비경인 그 섬.

 오늘도 그 푸르름을 간직하며 우리의 기억 속에 떠 있다. 

지금도 난 늘 푸른 섬 거문도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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