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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

하늘과 맞닿은 고개 너머, 대관령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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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의 삶, 인사드려요.

푸른 진주의 눈물이 바로 뚝 떨어질 것 같은 하늘을 본 적이 있으세요.

그 하늘을 보기에는 일 년에도 셀 수 있을 정도인데요. 

해발 천미터가 넘는 곳, 동과 서를 갈라놓은 곳, 

하늘과 맞닿은 고개 너머, 대관령을 향해 달려갑니다.

지금은 몇시간이면, 동해바다를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하루가 다 돼서

도착했던 곳이 었는데요. 그 원인이 남과 북으로 가로 놓인 태백산맥,

그중에 대관령이 한축을 이루었다 할 수 있겠죠. 

오늘도 대관령의 삶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꼼꼼히 서칭 하고자 합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가슴이 설레는 건 새로운 경험 때문이다.

우리 땅에도 이런 곳이 있었던가.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내려다보며

하늘과 맞닿은 고개 대관령에 아침 해를 앞세우고 하늘이 친구 하자며

성큼 다가선다. 대관령에는 이제야 민들레가 한창이다.

산 아래 마을은 봄을 지나 여름으로 향하고 있는데.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이곳은 봄이 절정을 맞고 있다.

봄이 늦게 찾아오는 땅 여름인가 싶으면 어느새 찬바람이 부는 땅이다.

짧은 대관령의 봄을 만나러 최정상에 오르니, 구비 구비 능성이 이어지고

초록의 들판이 거칠 것 없이 펼쳐져 있다.

 

 

 

 

하늘과 맞닿은 고개 너머, 대관령.

먼 나라 어느 시골 마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가한 그 풍광이

신기하기만 하다 하늘과 가까워서일까 바람이 거센 이곳에선

나무가 잘 자랄 수가 없다. 대신 풀밭이 무성하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목장들이 생긴 것도 이런 자연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양들은 벌써 십 년 넘게 여기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긴 겨울 동안 우리에 갇혀 있다. 들판에 나온 지 겨우 보름 사람의 눈엔

다 같은 풀로 보이는데 양들은 어떤 것이 맛있는 먹이인지 잘 아는 것 같다.

여리고 상큼한 풀만 골라서 먹는다. 어미가 부르니 새끼양이 쏜살같이 달려온다.

세상 어떤 품보다 포근한 엄마 품.

새끼 양은 막 잠 중이다. 먹을 것은 지천으로 널려 있고 햇살은 따사롭다.

 

 

 

 

하늘과 맞닿은 고개 너머, 대관령에서 양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양 떼 속으로 개 한 마리가 투입되고 흰순이라 불리는 이 개는

이른바 양떼 목장의 양치기다.

흰순이는 벌써 삼 년이 넘도록 양 몰이를 하고 있다.

흰순이는 이 목장에서 나흘에 한 번씩 양 떼를 이동시키는 일을 맡고 있다.

나흘이면 양 떼들은 초지의 풀들을 완전히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흰순이는 더욱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그 바람에 양들도 정신없이 한 곳으로 몰려간다.

한 시간여 전력 질주를 하다 보니 지친 기색이 보인다.

꽤나 힘든 모양이다.

 

 

 

 

하늘과 맞닿은 고개 너머, 대관령에 흰순이가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은 제 임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처럼 머리로 이해했을 리가 만무하고.

아마도 본능으로 감각으로 움직이는 것이리라.

따지고 계산하고 고민하고 한 군데라도 용납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은 그래서 어려움도 이기고 위험도 피한다.

하지만 이유 불문하고 주인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흰순이는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랑을 얻는다.

계산 없이 주고 나면 무엇이 돌아오든지 기쁨으로 받을 수 있다.

설사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한다 해도 그는 나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바탕 이동 전쟁을 치르고 나자 모두가 지쳐버렸다.

진정으로 따뜻한 마음을 담아 수고를 위로했다.

백 마디의 말보다 천금을 주고 산 선물보다도 더 값진 보상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을 받는 길인지 아는 흰순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개가 아닐까.

대관령 목장에서 내려다보면 지평선이 닿는 곳까지 끝도 없는 들판이 눈에 들어온다.

잘만 다루면 부자가 될 것 같은 욕심나는 들판이다.

하지만 대관령에 사는 사람들은 땅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가도 가도 집 한 채 만나기 힘든 곳.

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꽃이 흔들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부수어 준다.

하늘과 맞닿은 고개 너머, 대관령에 길이 난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였다.

지금 대관령은 고개도 산도 직선으로 통과하는 육 차선 고속도로로 넘어 다닌다.

구비 구비 능선을 타고 넘던 고속도로도 구 도로가 돼버렸다.

여기가 대관령이라는 것을 비석을 보고 간신히 알아챌 정도다.

예전 고속도로는 하루 종일 차 한 대가 지나가질 않는다.

길은 길이지만 아무도 다니지 않는 잊혀진 길이다.

바람도 넘기 힘들다는 대관령의 길을 내는 일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일과 같았다.

조선시대 몇몇 기록들 속에 이 대관령 옛길이 등장한다.

어쩌면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신 사임당의 이야기일 것이다.

한양으로 시집간 사임당은 잠시 고향 강릉에 들른다.

그때마다 그녀는 이 대관령을 넘어야 했다.

늙으신 어머니를 두고 옛 길에 접어드니 벌써 고향집이 아득하다.

이 길은 흰 구름이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길이었다.

아흔아홉 구비 험한 산길은 외통수 길이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대관령 옛길에선 지체 높은 양반네도 천한 노비도 다 같은 신세였다는 점이다.

 

 

 

 

하늘과 맞닿은 고개 너머, 대관령.

그 힘들어할 일도 아니고 삶이 왜 이 모양이냐고, 한탄할 일도 아니다.

긴 겨울을 지나 농사를 다시 짓게 된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날이 따뜻해진 뒤로 마을 할머니들은 거의 매일 모여서 점심을 나눈다.

주어진 시간은 일 년에 오 개월여 남짓 겨울이 오면,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으니 모든 정성을 모아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

부드러운 감자에서는 달콤한 맛이 난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건 무슨 조화일까.

만약 감자를 사랑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감자 맛에 쉽게 지쳐버렸다면 대관령을 지키며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난은 하늘과 맞닿은 거대한 자연 곁에 사는 대가이고

사람에 대한 갈증은 소중한 이웃을 갖게 해 주었다.

늘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사랑이다. 값어치가 없어서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늘 내 곁에 있는 것이다.

 

 

 

 

세상은 이미 바뀌었는데 이들의 일상이 여전히 그대로인 것은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 빨리 멈춰버리는 대관령의 계절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조바심 나게 한다.

사람들은 어서어서 이루고 어서 어서 가지려 하지만,

하루가 짧고 일 년 해가 짧아 더디 늙어가는 대관령은

시간과 바람과 침묵을 견디며 서 있다.

 

 

 

 

하늘과 맞닿은 고개 너머, 대관령.

세련되고 깨끗하게 잘 차려입은 젊은 새길 보다,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묻어나고 넉넉한 대관령 옛길이 더 좋은 것은

내가 아직 사랑하는 법을 잊지 않아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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